'땅꺼짐 사고' 서울 보행도로가 더 위험하다

2024-09-27 13:00:22 게재

도로 함몰 원인 절반이 노후 하수관

차도 보다 보도 밑에 하수관 더 많아

보도 관리·지하공사 기준 강화해야

2015년 2월 서울 용산역 맞은편 한강로 주상복합건물 신축공사장 앞 정류장. 버스에서 내린 남녀 한쌍이 인도에 발을 딛는 순간 땅이 내려앉아 3m 깊이 아래로 떨어졌다. 구멍은 겉에서 보면 가로 세로 1.2m 정도였지만 지하로 내려가면서 점점 폭이 넓어져 최대 너비가 5m까지 커진 것으로 확인됐다.

각종 땅꺼짐 사고로 국민 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차도가 아닌 보도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땅 꺼짐(싱크홀) 사고가 발생했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 인근에서 30일 오전 도로 침하가 발견돼 경찰이 인근 차로를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국내에서 발생하는 땅꺼짐 사고는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지하수 수위 변화로 지표면이 낮아지는 도로 침하와 건축 공사로 인한 대규모 토사 유출 때문에 생기는 도로 함몰이다. ▶관련기사 5면

전문기관 조사에 따르면 땅꺼짐 사고 원인의 50% 가까이는 하수관 손상이며 상수관 손상이 뒤따른다. 자연적인 지하수 유출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건축 공사의 부실한 마무리와 어설픈 차수 대책으로 인한 도로 함몰 사고는 ‘인재’ 성격이 짙다. 노후한 하수관과 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고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얘기인데 문제는 하수관이 차도가 아닌 보도 밑에 더 많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도 땅꺼짐이 차도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5년 용산역 사고에서 보듯 무방비 상태에서 땅밑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방재분야 관계자는 “차도 사고가 더 잦기 때문에 땅꺼짐 예방대책도 차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향후 더 큰 위험은 보도에서 발생할 수 있다”며 “도로와 대형 건축 공사가 근처에서 벌어지는 곳은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도 땅꺼짐의 또다른 우려는 바로 옆 건물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2015년 사고에서 보듯 보도 입구 구멍은 작지만 지하에는 이미 훨씬 큰 동공이 만들어졌을 수 있고 만일 하수관이 건물 밑으로 지나가고 있을 경우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방재 관계자들 사이에서 보행도로 관리와 사고 징후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의 보행도로 지하 관리 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시가 보유한 보도용 지하동공 탐지차량은 달랑 1대뿐이며 그 외 장비는 손으로 밀고 다니는 끌차형 장비 2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대대적인 지하동공 탐지에 나섰지만 정부는 최근에서야 TF를 만드는 등 뒷북 대책에 급급하다. 26일 출범한 국토부 지하안전관리체계 개선 TF에서도 차도가 아닌 보행도로에 대한 문제인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행도로 지하 관리에 대한 시급성이 커지고 있지만 시에는 이에 대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관의 크기, 내구연한에 따른 분류는 하고 있지만 보·차도별 지하관 현황은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의 방재분야 관계자는 “하중은 차도가 많을 수 있지만 지하관의 노후화는 차도와 보도에서 똑같이 진행된다”며 “차량도로 중심 대책 수립을 넘어 보행도로에 특화된 예방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방재분야 관계자는 “보도 밑 관리와 함께 지하공사 전반에 대한 안전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면서 “착공 전 받아야 하는 굴토심의 기준을 현행 10m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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