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증거 없이 ‘공소 취소 후 재기소’ 안돼”
1·2심 공소기각 … 대법, 상고기각
“공소 취소 전 제출 가능했던 증거”
검찰이 공소를 취소하기 전에도 수집 또는 조사해 제출할 수 있던 증거는 ‘새로 발견된 증거’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이러한 증거만으로는 공소 취소 후 재기소를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형사소송법상 공소취소 후 그 범죄사실에 대해 다른 중요한 증거를 발견한 때에 한해 다시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공소취소 전에 제출할 수 있던 증거들은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공소기각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2012~2013년 피해 회사 대표를 속여 총 52억5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2017년 12월 기소됐다.
그런데 1심 공판준비기일 중 공소장 일본주의(공소장에 범죄사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만을 기재하도록 한 원칙) 위반 여부가 문제가 됐다. 공소장에 간접 사실이나 검사의 판단이 기재된 여러 각주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검사는 2018년 5월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공소 취소장을 재판부에 제출했고. 그 다음달 공소기각이 확정됐다.
이후 검찰은 약 한 달간 참고인들의 진술을 청취한 수사 보고, 진술조서 등의 증거를 추가로 수집해 2018년 7월 종전 사건과 동일한 공소사실로 A씨를 기소했다.
재판의 쟁점은 검사가 A씨를 다시 기소할 수 있는지였다.
형사소송법 329조는 ‘공소취소 후 그 범죄사실에 대한 다른 중요한 증거를 발견한 경우에 한하여 다시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검찰은 이 조항이 증거불충분 사유로 공소취소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조항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선행 사건에서 정식 재판에 돌입하지 못한 채 증거조사 없이 공소취소됐기 때문에 모든 증거가 법원 입장에서는 ‘다른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모두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1심은 “증거불충분으로 공소취소된 경우뿐만 아니라 공소취소의 이유와 상관없이 공소취소에 의한 공소기각의 결정이 확정된 때에는 해당 규정(형사소송법 329조)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또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이 공소취소 후 새로 발견된 증거라고 볼 수 없어 해당 규정을 위반해 공소가 제기된 때에 해당한다며 공소기각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재기소 요건에 관한 형사소송법 규정은 공소 취소 후 절차의 명확성 내지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원칙적으로는 금지되는 재기소를 허용하는 예외를 정한 규정”이라며 “그 요건인 ‘새로운 증거’인지 여부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검사는 선행사건에서 공소취소장에 그 이유에 관해 아무런 기재도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형사소송법에서 그 소송행위를 일정한 방식 및 절차에 따라 하도록 규정한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해 공소취소를 했다”며 “검찰에서 제출한 증거들은 공소취소 전 수사 과정에서 수집·조사할 수 있던 자료에 불과해 새로 발견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 판단에 대해 잘못이 없다며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공소취소 후 재기소는 헌법이 규정하는 ‘거듭처벌 금지의 원칙’에 따라 불안정한 지위에 놓일 수 있는 피고인의 인권과 법적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관점에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