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 갈등 왜?…“검사동일체였을 뿐 존중·존경 안 보여”
검사 선후배로 끈끈했던 두 사람, 정치입문 뒤 충돌 반복
윤-한, 검사동일체 원칙 아래 ‘이해’ 같아서 함께했을 뿐
정치철학 공유하는 김대중-노무현은 ‘존중과 존경’ 관계
한때 윤석열정권의 1인자와 2인자로 함께 했던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끝없이 충돌하고 있다. 검찰에서 ‘화양연화’(인생의 전성기)를 함께 보냈던 두 사람이 정치입문 뒤에는 왜 ‘정적’으로 돌변했을까. 표면적으로는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저격’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지만 정치권과 검찰에서 두 사람을 지켜봤던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두 사람은 검찰식 ‘패거리문화’로 묶여 함께했을 뿐 애당초 철학을 공유하는 ‘정치적 동지’는 아니었다는 진단이다. 검찰에서는 ‘검사동일체’ 원칙 아래 서로의 이해가 맞물려 함께했지만, 현재-미래권력 관계의 모범답안으로 꼽히는 김대중-노무현처럼 서로를 향한 존중과 존경의 마음은 없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검찰과 윤석열정부 초기까지만 해도 가장 가까운 사이로 꼽혔다. 두 사람은 검찰에서 인생의 굴곡을 함께했다.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검사 선후배로 대형사건을 함께 수사하면서 ‘윤석열사단’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팀에서도 함께했던 두 사람은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하면서 ‘화양연화’를 보냈다.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출세가도를 달릴 때 한 대표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어려운 시기도 공유했다. 조 국 수사로 정권의 공세에 시달렸던 두 사람은 윤석열정권 이후에는 다시 1인자(대통령)와 2인자(법무장관·여당 비대위원장)로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한 대표가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정치인이 된 뒤 두 사람 관계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 대표의 정치적 행보마다 대통령실이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한 대표의 잇단 독대 요청에 윤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현재권력(윤 대통령)과 미래권력(한 대표)의 충돌로 인해 여권에선 공멸 우려까지 나오기 시작했지만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품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치권과 검찰에서 두 사람을 오랫동안 지켜봤던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윤-한 관계의 파국은 이미 예고됐다고 입을 모은다. 애당초 두 사람은 검찰 특유의 ‘패거리문화’로 엮여 움직였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가 엇갈리면 언제든 등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검찰식 ‘패거리문화’ ‘검사동일체 원칙’으로 묶여 20여년을 함께하면서 서로 밀고 당겼지만, 정치입문 이후에는 현재-미래권력으로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갈등 가능성은 정치인 변신 이후 곳곳에서 감지됐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정치적 리더십’에 의구심을 품었다는 전언이다. 친윤 인사는 29일 “윤 대통령은 정권 초 한 대표를 법무장관 1순위로 검토하지 않았다. ‘(한 대표가) 검사로서 실력은 괜찮지만, 법무장관이란 거대조직의 수장으로서 리더십은 의문’이란 판단이었다”고 전했다. 폭탄주를 앞세운 ‘큰 형님’ 역할에 익숙한 윤 대통령으로선 한 대표의 ‘콜라 리더십’에 우려를 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검찰식 상명하복에 익숙한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부하’ 정도로만 인식했을 수도 있다.
반면 검사 시절 윤 대통령에게 수사와 관련된 조언을 자주했던 한 대표는 최근 측근들에게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에는 조언을 드리면 잘 경청했는데, 대통령이 된 뒤에는 변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모두 ‘검사식 우월감’에 젖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찰식 ‘패거리문화’ ‘검사동일체’로 엮여 잘 지내던 두 사람이 정치권에서 불협화음을 빚는 건 김대중-노무현 전례와 대조된다. 정치권에서 풍파를 겪은 김대중-노무현은 서로를 존경하고 존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에서 “DJ에 대해서는 ‘지도자’로 이름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역사의 인물이 된 김 구 선생을 제외하고는 역대 대통령이나 현존하는 정치인 중에서 내 마음 속 지도자로 생각해 본 사람이 없고 , 나로서는 그 분(DJ)을 특별히 존경하는 셈”이라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오열했던 김 전 대통령은 이후 인터뷰에서 “그가 죽었을 때 내 몸의 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철학을 함께하는 김대중-노무현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품었지만, 검찰 ‘패거리’ ‘검사동일체’로 엮인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서로의 이해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