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위기의 한국 제조업과 노벨문학상

2024-10-14 13:00:02 게재

S&P는 지난 10일 ‘세계 이차전지 시장’ 보고서에서 ‘전기차 캐즘’에 대해 “유럽과 미국의 전기차 판매량 성장세가 향후 12~24개월 동안 둔화하겠지만 전기차로의 전환이 이어지고 있어 글로벌 이차전지의 장기적 매출 성장을 뒷받침할 것”이라며 “중국과 한국의 배터리 제조사들이 향후 수년간 선두자리를 지킬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중국과 한국의 배터리 업체를 보는 시각이 크게 달랐다.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에 대해선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가격경쟁력을 강화한 신제품 출시를 통해 수익성을 제고하며, 향후 2년 동안 잉여현금흐름이 추가적으로 개선돼 순현금 포지션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신용등급 ‘A-’, 등급전망 ‘안정적’을 부여했다. 현금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으니 앞으로 신용등급을 높이겠다는 얘기다.

반면에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해선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공격적 생산능력 확대에 따른 설비투자 부담이 이어져 상각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차입금 비율은 작년 1.5배에서 2024~2025년 2.5~2.6배로 높아질 것으로 추산하며 신용등급 ‘BBB+’, 등급전망 ‘부정적’을 부여했다. 신용등급을 낮출 수도 있다는 경고다.

한국기업의 국제경쟁력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

CATL은 현재 미국 유럽 등 서방으로부터 보복관세 등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기술력과 세계최대 중국 내수시장을 절대 기반으로 버티며 점점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반면에 LG에너지솔루션 등 우리 이차전지 업체들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전을 거듭하고, 모기업들은 천문학적 투자비를 대느라 휘청거릴 지경이다.

여기에 외국인은 왜 지난 11일까지 23거래일 연속으로 한국 주식을 순매도하며 무려 10조원어치를 팔아치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숨겨져 있다. 외국인이 최근 집중 매도한 것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주식이나, 광범위한 의미에서 보면 ‘한국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한국은행이 38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경기부양에 나섰으나 외국인은 이날도 한국주식을 팔아치웠다. 외국인이 중시하는 건 예상됐던 금리인하가 아닌 기업들의 실적이라는 의미다. 더욱이 한은은 부동산투기 재연에 발목 잡혀 일찌감치 “올해 더이상 금리인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외국인이 앞으로 더욱 기업 실적, 즉 경쟁력에 주목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인 전영현 부회장은 지난 8일 ‘어닝쇼크’인 3분기 잠정실적 발표 후 이례적으로 메시지를 통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며 “지금 저희가 처한 엄중한 상황을 꼭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외국인 이탈이 ‘근원적 기술 경쟁력’에 대한 의문임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50주년 행사’마저 백지화할 정도로 비장한 분위기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수 대기업들도 벼랑끝 ‘경쟁력 위기’에 직면, 절치부심중이다. 중국이 반도체 이외 석유화학 철강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더 이상 ‘한국산 중간재’에 의존하지 않을 정도로 약진했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산업구조적 위기’ 도래다.

세계화된 한국 문화에서 제조업 위기 돌파구 보여

하지만 밝은 소식도 있다. 우리는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 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그런 대표적 예다. AP통신은 한 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점점 커지고 있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을 반영해준다”며 “앞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받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도 성공을 거뒀으며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등 K팝 그룹도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고 열거했다. 한국이 제조업 국가의 벽을 넘어 콘텐츠 강국으로 점프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독일, 일본 등 제조업 강국들이 넘지 못한 벽이다.

제조업과 콘텐츠는 상-하위 개념이 아니다. 최상의 보완 관계다. 한 예로 일본 조선업은 최고 부가가치 크루즈 생산에 실패했다. 문짝 하나, 침대 하나까지도 최고의 문화수준을 요구하는 고객 ‘니즈’를 맞추지 못해서다. 위기의 한국 제조업에 하나의 돌파구가 보인다 하면 과장일까.

박태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