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재판관 6명으로 심리 진행
‘7명 이상 재판’ 조항 효력 정지
탄핵 결정은 6명 전원 찬성해야
여야 대립으로 17일 퇴임하는 3명의 헌법재판관 후임을 선출하지 못해 ‘헌재 마비’ 상황이 우려됐지만 헌법재판소가 이를 막았다.
헌법재판관 7명의 심리 정족수 조항의 효력을 당분간 정지키로 한 것이다. 이로써 재판관 9명 중 3명이 퇴임해 6명만 남더라도 심리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14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헌법재판관 공백으로 자신에 대한 탄핵 심판 절차가 정지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낸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받아들였다. 헌재는 이날 헌법재판소법이 정한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는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국회가 17일 퇴임하는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의 후임 재판관 선출을 미루면서 헌재 사건이 줄줄이 멈출 위기에 놓였었다. 재판관이 6명만 남게 돼 이른바 ‘심리 정족수’를 못 채우게 된 것이다.
헌재는 “임기 만료에 따른 재판관 공석 상태에서 해당 조항에 따라 사건을 심리조차 할 수 없다면 이는 재판 외 사유로 재판 절차를 정지시키는 것이며,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결정으로 세 재판관 퇴임 후에도 이 위원장의 탄핵 사건 심리는 이어지게 됐다.
이 위원장은 지난 8월 국회에서 탄핵이 소추돼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이 위원장 사건뿐 아니라 현재 계류 중인 헌재 사건들도 심리 중단을 피하게 됐다.
이날 헌재가 헌법재판소법의 ‘심리 정족수 7명’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킨 이유는 세가지다.
헌재는 우선 오는 17일 3명의 재판관이 퇴임해 공석 상태가 된다면 이 위원장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할 것이 확실히 예측된다고 봤다.
또 3명의 재판관 퇴임이 임박한 만큼 이 위원장의 손해를 막아야 하는 긴급성도 인정된다고 했다.
헌재는 “헌법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민·형사재판, 행정재판은 물론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도 포함된다”고 했다.
헌재는 또 “국회의 탄핵 소추를 받은 이 위원장은 헌재의 탄핵 심판이 있을 때까지 권한이 정지되기 때문에 탄핵 심판은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면서 “재판관 공석으로 심리조차 받을 수 없다면 이 위원장의 권한 정지 상태가 그만큼 장기화되고, 업무 수행에도 중대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헌재 결정으로 재판관이 6명밖에 없어도, 이 위원장 탄핵 심판뿐 아니라 다른 헌법 사건들도 모두 심리를 할 수 있게 됐다.
헌재는 “만약 재판관 6명의 의견이 팽팽해 결론을 내지 못한다면 공석인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기를 기다렸다가 결정하면 된다”며 “다만 더 신속한 결정을 위해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기 전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 조사를 하는 등 사건을 성숙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면, 그 후 본안심판의 종국결정에서 청구가 인용되더라도 이러한 절차를 제때에 진행하지 못해 신청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은 이미 침해된 이후이므로 이를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헌재는 재판관 공백에 대한 대비가 없는 현행 헌법재판소법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헌재는 “임기가 정해져 있는 재판관의 퇴임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이지만, 재판관 공석 문제가 반복해 발생하고 있다”며 “재판관 공석 상황을 보완하거나 대비할 만한 제도적 보완 장치가 전무하다”고 했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임명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국회 선출 3명으로 구성된다. 이번 세 재판관의 후임은 국회의 선출 몫이다.
법에는 국회 몫 재판관 추천 방식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다. 다만 양당 체제가 된 후부터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선출하는 관례가 있었다.
민주당이 의석 수에 따라 후임자 3명 중 2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야 합의가 되지 않아 재판관 선출이 지연됐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