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밭갈기 중 사고 “교통사고 아냐”
1심,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적용 … 공소기각
2심, “트랙터 이동 중 사고 아냐” 파기 환송
대법, “2심 판단 잘못 없어” … 1심 다시 재판
트랙터 로터리(밭 갈기) 작업 중 발생한 다리 절단 사고는 트랙터 이동 중 일어난 것이 아니므로 교통사고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교통사고로 판단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공소기각 결정한 1심 재판이 잘못됐다는 결정이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한 1심을 파기환송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A씨는 2022년 3월 2일 오후 자기 소유의 논에서 트랙터 로터리 작업을 하던 중 회전 날로 B씨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A씨는 6개월여 전 이웃 주민 B씨로부터 산 트랙터 조작과 운전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근처를 지나던 B씨는 교습을 해 주겠다며 직접 로터리 작업 시범을 보였다.
이를 지켜보던 A씨는 나머지 부분을 직접 해 보겠다며 운전석에 올랐는데, 트랙터 뒤쪽에 있던 B씨를 미처 보지 못하고 로터리 날을 내린 다음 트랙터를 작동시켰다. 회전하는 날에 오른 다리가 말려 들어가면서 B씨는 허벅지가 절단되는 등의 상해를 입었다.
사건의 쟁점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업무상과실치상죄 중 무엇을 적용할지였다. 차량의 일종인 트랙터를 운전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본다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면 업무 중 실수로 남을 다치게 한 업무상과실치상죄로 본다면 피해자의 의사가 형량에 반영될 뿐 A씨가 처벌을 피하기는 어렵다.
검찰은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적용해 기소했으나 1심 법원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적용하는 게 맞다며 공소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트랙터는 도로교통법상 ‘차’에 해당하고 이 사건 사고는 트랙터의 이동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교통사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이 같은 1심 판결을 파기했다. 항소심은 A씨가 트랙터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낸 것이 아니라, 로터리 작업 중 사고가 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고 발생 직전에 A씨는 로터리 작업을 위해 트랙터의 로터리 날을 내린 다음 회전시킨 것이고, 단순히 트랙터를 이동시키는 과정이었다면 로터리 날을 내리거나 회전시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적용해 B씨의 처벌불원 의사를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한 1심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판단이 옳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2심 법원이 공소기각 판결을 파기하면 1심 법원이 다시 재판해야 하므로 A씨의 사건은 광주지방법원 단독재판부에서 1심부터 다시 열릴 예정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