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삼성전자가 위기에서 탈출하려면
국내 매출 1위 기업 삼성전자는 3분기 잠정 매출(연결기준)과 영업이익이 각각 79조원, 9조1000억원이라고 8일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17.2%, 영업이익은 274.5% 증가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어닝쇼크’라는 말까지 나왔다. 삼성전자 주가는 하락을 거듭해 16일 종가기준으로 5만전자(5만9500원)가 됐다.
실적발표 당일 반도체부문을 총괄하는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은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하며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 앞날에 대해 걱정을 끼쳤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국민과 투자자들은 지금 ‘삼성전자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최근 기업관계자를 만나는 자리마다 삼성전자 위기가 화제다.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사람이든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든 삼성전자의 위기를 거론한다.
위기 원인은 변화 대응력 부족, 자만, 절실함 부족
삼성전자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전현직 삼성전자 임직원과 반도체업계 전문가들 말을 종합해보면 우선 변화 대응력 부족을 꼽을 수 있다. 반도체 방향이 모바일과 PC에서 서버와 인공지능(AI)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이에 맞는 사업전략 수립에 실패했다.대표적인 사례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포기다. 2015년 2세대 HBM 개발에 가장 먼저 성공한 곳은 삼성전자였다. 하지만 당시 삼성전자 경영진은 HBM 개발보다는 모바일향 반도체 개발에 집중하자는 결정을 했다. 잘하고 있는 것은 더 잘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 정도는 언제든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넘어선 오만도 작용했다. 또 잘하는 것에 안주했다.
기술과 품질은 삼성의 생명이다. 최근 이것이 흔들리고 있다. 구형 갤럭시 휴대폰 업데이트 과정에서 작동이 멈추는 현상이 발생했다. 무한 부팅 오류다. 뒤늦게 뛰어든 차세대 HBM은 테스트 단계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절실함이 경쟁사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도 원인이다. 파운드리반도체 경쟁사인 대만TSMC의 업무집중도를 볼 필요가 있다. 2014년 14나노제품을 만들 때 TSMC는 24시간 일하는 개발팀을 구성해 운영할 정도로 역량을 집중했다. 이게 바탕이 돼 삼성전자를 따라잡았다. TSMC는 회사와 대만의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 삼성전자와 차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절실함을 대체할 만한 경영전략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전 부회장이 사과문에서 언급했듯이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 혁신은 삼성전자에게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개발자가 낸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이를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최종적으로 경영진과 개발자가 토론을 한 뒤 시장에 내놓을 것인지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삼성전자는 새 아이디어를 채택하기보다 사업화가 안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 분위기라는 게 전현직 임직원들 지적이다. “조직이 거대해지면서 시간을 다투는 사안을 결정하는데 경쟁업체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등 관료주의적 문화에 젖게 된다. 이 점을 반성해야 한다”는 전직 임원의 얘기가 개인적 경험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전 부회장은 ‘철저한 미래 준비’로 삼성전자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했다. 수성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정신 재무장을 강조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TV LCD 휴대폰 등에서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각 부문 1등 자리에 올라서면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위기에 빠졌다. 중국의 반도체굴기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도 삼성전자 위기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업종전문·고도화한 기업만 살아남는 시대, 경영전략 수정을
반성문을 썼다고 삼성전자 위기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전자가 종합 반도체·전자회사를 지향할 것인지, 선단형 재벌체제를 유지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또한 협력업체와 관계 정립도 중요하다. 다품종소량생산시대에 맞게 거대해진 사업부문을 나눌 필요도 있다. 업종전문·고도화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에 맞게 경영전략을 바꾸어야 한다는 얘기다. TSMC는 협력업체와 파트너십을 강조하며 한팀으로 움직인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수출의 18%를 차지한다. 그 위상만큼 위기를 벗어나길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정부도 미국과 일본 수준의 반도체산업 직접지원정책으로 전환하는 자세변화가 필요하다.
범현주 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