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려면 육체만 아니라 정신·심리도 건강해야”
자살, 네팔 이주노동자 한국 사망원인 1위
우울증 등 다국어 심리상담·쉼터 마련해야
“너무 힘들 땐 모든 게 막막하고 앞이 캄캄해서 죽음밖에 해결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가족과 같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힘든 마음을 나누면서 많은 위로가 됐습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썸낭씨 이야기다. 올해 32세인 썸낭씨는 2017년 6월 빚은 진 상태에서 비숙련 취업비자(E-9)로 한국에 들어왔다. 월급을 받아 본국으로 송금해 가족 생활비와 빚을 갚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했다. 2022년 부인도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떨어져 생활하다 임신으로 일을 중단하고 출산했다. 썸낭씨는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으나 임금체불이 계속되면서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불면증까지 생겼다.
올해 초 경기 안산시 이주민지원센터인 지구인정류장 캄보디아 쉼터에 머물렀다. 임금체불로 인한 경제적 압박과 가족부양의 책임감에 괴로워 자살까지 생각했다. 부인과 이야기를 계속 나누며 지지를 받으면서 지구인의정류장 활동가에게 임금체불 상담을 받고 체류자격 변경 신청도 했다. 쉼터에서 캄보디아 사람들과 서로의 처지와 어려움을 나누고 공유하며 점차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노동을 하려면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 심리도 건강해야 합니다.”
2023년부터 경기 양주시에서 스리랑카 등 동남아 이주민쉼터 ‘마하보디사’ 우연 스님은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자살사례가 두달에 1~2명씩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연 스님은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 대한 예산을 전면 삭감하면서 한국어도 잘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물어보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우연 스님은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은 시차로 본국의 가족과 연락이 쉽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서 “지난해에만 폐소공포증 등 정신질환으로 10~15명과 함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아직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자신의 질병을 인정하지 않거나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그런 상태가 방치되면 자해 자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주민쉼터에서 한해 2~3회 의료봉사를 하고 양주시도 무료진료소를 지원한다. 우연 스님은 “이러한 이주노동자를 위한 정신건강 지원 정책 확대, 이주민과 선주민이 어울릴 수 있는 행사를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K-POP, K-드라마 등 상상 속에서 느낀 한국과 입국해 노동환경에서 체감한 너무나도 다른 근무현장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케이피 시토올라 재한네팔인공동체 대표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의 시험 합격률이 매우 높은데 주로 대졸자이거나 석·박사 소지자들로 고국에서 노동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이들이 한국에 오자마자 농업 어업 등에서 긴 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을 견디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허가제로 들어오기 위해 짧게는 1년 길게는 4~5년간의 긴 시간을 준비하며 들어간 비용이 막대한 빚이 돼 빨리 갚아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에 시달린다”고 덧붙였다.
주한 네팔대사관에 따르면 한국 내 네팔 이주민 수는 올해 8월 기준 약 7만5000명에 달한다. 대부분의 공장이나 산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스트레스는 자살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주한 네팔대사관에 따르면 2008년부터 현재까지 전체 사망자 259명 가운데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70명으로 전체 사망자 중 사망원인 1위를 차지했다.
시토올라 대표는 “한국 입국 후 초기 1년 이내에 자살자가 급증한 점에 비춰 입국 직후 초기 적응을 위한 사업주 또는 관리자 대상 교육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사업장 단계별 정기점검, 상담·모니터링 △정신적 심리적 문제 발생 시 긴급하게 케어할 수 있는 정신과적 위기 개입 방안 △이주민 우울증, 자살 관련해 다국어 심리상담과 쉼터 마련을 제언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