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키오스크, 휠체어 이용자에겐 무용지물”
인터뷰 | 황재연 한국지체장애인협회장
친환경·친기술만큼 ‘친장애’ 사회 중요
서울 25개 자치구, 장애인 운동부 없어
“친환경을 위해 전기차는 늘어났지만 휠체어 이용자는 충전소를 이용할 수 없고, 키오스크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휠체어에 앉은 채로는 주문을 할 수 없죠.”
황재연(사진) 신임 한국지체장애인협회장은 “친환경·친기술만 내세울 게 아니라 장애친화적 사회를 만드는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환경감수성이나 성인지감수성에 더해 장애감수성이 발달한 사회가 더 앞선 사회”라고 말했다.
휠체어 이용자가 전기차 충전소를 이용할 수 없는 이유는 주차시설 규격이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주차공간과 충전기 사이 간격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일부 전기차는 충전잭이 운전석 쪽에 설치돼 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휠체어 이용자 스스로 문을 열고 충전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키오스크(무인 주문장치)는 노약자뿐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높은 벽이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는 기기 상단 메뉴바를 눌러 주문을 할 수가 없다. 이 또한 장비설계 단계부터 장애감수성이 부족한 데 기인한다. 황 회장은 “과학 발달로 생활은 편리해지는데 오히려 장애인은 소외되고 있는 것”이라며 “과학기술 발달이 장애인 삶에도 도움이 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황 회장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남산곤돌라 사업을 환영하고 있다. 기존 케이블카는 공간이 협소해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지만 새로 만드는 곤돌라는 넓직한 공간과 저렴한 요금으로 장애인들 이동권 보장, 남산 나들이에 보탬이 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황 회장은 얼마전 파리에서 열렸던 패럴림픽 이야기도 했다. 한계에 도전하는 장애인들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고 실제 장애인 재활에 스포츠가 큰 역할을 하지만 정작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장애인운동부가 있는 곳은 단 한곳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25개 구 중 절반이라도 장애인운동부가 생기면 스포츠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찾아가는 장애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운동 전략 ‘따로 또 같이’ = 지체장애인협회는 한국 장애인 단체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전국 기초지자체에 지회가 구성돼 있고 회원 수가 약 48만명에 달한다. 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표방하며 혁신을 거듭, 장애인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발전했고 황 회장 본인도 강직성 척추염으로 회복 불능의 장애 판정을 받은 지체장애인이다.
황 회장이 강조하는 지체장애인협회의 핵심 역할은 ‘따로 또 같이’를 실천하는 일이다. 장애인은 15개 유형으로 세분화되며 각 유형별로 삶이 다르고 접근 방법도 달라야 한다. 하지만 제도를 만들고 개선하는 일이란 공통 가치 앞에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게 그가 앞세우는 장애인 운동 전략이다.
잦은 지하철 시위로 장애인단체는 과격하다는 이미지가 형성된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황 회장은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주장도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장애인 운동의 다양성 가운데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러나 물리적인 충격을 주면서 요구를 관철하려는 태도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이제는 시민을 상대로 합리적인 설득을 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황 회장이 고민하는 또다른 장애인 문제는 ‘고령화’다. 전국적 고령화 추세에 장애인도 예외가 아니지만 장애인 고령화는 비장애인 고령화보다 훨씬 많은 문제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간병보험 도입을 협회차원에서 역점과제로 추진하는 이유다.
황 회장은 지난 8월 제9대 한국지체장애인협회장으로 선출됐다. 전체 대의원 478명 가운데 440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283표(64%)를 얻은 황 회장이 당선됐다. 황 회장은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서울시협회장과 중앙회 이사를 지냈으며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사, 서울장애인체육회 수석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