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왕고래 시추와 탄소중립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에 시추 계획을 승인한 경상북도 포항 영일만 인근 심해 유전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다. 이곳에서 경제성 있는 석유·가스가 발견될 경우 우리나라는 에너지 소비국에서 일약 산유국으로 도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실시된 국정감사에서 한국석유공사가 국회에 자료 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일각에서는 뭔가를 감추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시추 예정지는 영일만에서 38~100km 떨어진 깊이 1km 이상의 심해로 이른바 ‘대왕고래’라고 명명된 개발 후보지이다. 특히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위치하고 있어 한국의 단독 시추가 가능하다.
대왕고래 후보지의 탐사자원량은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한다고 한다. 시추 성공률은 20% 정도로 리스크는 보통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탐사작업을 해 오던 민간업체들이 연이어 사업을 포기한 점 등으로 미루어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석유공사, 국회에 자료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의구심 자초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영일만 앞바다에서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탐사결과가 나왔다”면서 “지금부터는 실제 매장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시추단계로 넘어갈 차례”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여당의 총선 참패와 야당의 김건희 특검 공세 등 정치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이 국면전환용으로 이 같은 발표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부는 지난해 동해 심해에서 7개 유망구조를 도출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인 1975년에는 영일만 인근 수심 200m의 대륙붕에서 석유가 발견돼 전 국민이 환호했다. 그러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실패한 적이 있다. 하지만 1998년엔 국내 최초로 울산 남동쪽 58km 지점(동해-1 가스전)에서 가스층이 발견돼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천연가스를 상업 생산한 바 있다.
석유공사는 2017년 9월부터 1년여에 걸친 탄성파 탐사자료를 평가, 이번에 윤 대통령이 유망하다고 밝힌 ‘6-1광구’에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불과 두달 뒤인 2018년 12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자발적으로 추가 탐사를 포기하고 지분을 반납했다. 사업 초기부터 줄곧 물리탐사를 같이 해 온 호주 최대 석유개발기업 우드사이드도 2022년 중반께 철수 의사를 밝힌 뒤 2023년 1월 한국을 떠났다.
특히 석유공사는 ‘성공불 융자’ 제도에 의거 2015년 이후 사업 손실 융자금 3억5000만달러를 2022년에 감면받았다. 이중 7909만달러가 이번 시추 후보지인 ‘제8광구 및 6-1광구 북부 사업’에서 발생했다. 이에 따라 국민 상당수가 이번 시추 성공 가능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지역에서 오는 12월 첫 탐사 시추에 나선다. 심해 석유 시추는 시추공 하나에 1000억원 이상 들어갈 정도로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하는데다 고도의 기술이 수반돼야 한다. 따라서 12월부터 약 4개월간 진행할 1차 시추는 석유공사 단독으로 수행하지만 2차 시추부터는 해외 석유기업 등의 투자를 받아 공동 개발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최근 사업 투자유치 자문사로 S&P 글로벌을 선정했다. 또 암석·가스 등의 성분을 기록·분석하는 작업은 세계 1위 시추기업인 미국 ‘슐럼버거’가 맡는다.
미래 불확실한 투자하려면 정확한 정보 제공해 국민 설득시켜야
자원 개발은 실패율이 무척 높다. 따라서 혈세로 미래가 불확실한 막대한 투자를 하려면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설득시켜야 한다. 그런데도 석유공사는 ‘영업기밀’ ‘투자유치 어려움’ ‘자료요청량 과다’ 등의 이유로 국회에 자료 제출을 소홀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 의원조차도 시추를 위한 첫해 예산 1000억원을 확보하려면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데 “자료 제목만 제출하는 식으로 어떻게 야당을 설득하겠느냐”고 질타할 정도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2021년 이후로 새로운 석유와 가스 개발이 이루어져선 안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너무 높아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탄소중립 등 도처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지만 이번 시추의 성공을 기대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