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경찰의 날’에 그려보는 우리들의 자화상

2024-10-24 13:00:01 게재

지난 21일은 ‘경찰의 날’이었다. 이날만큼은 경찰관들의 노고와 헌신에 감사하는 축하와 격려로 가득 찬 하루였다. 시민과 경찰이 서로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쉼 없이 낮과 밤을 번갈아 국민의 곁을 지켜온 경찰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바란다.

기념식에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오후에 다시 언급한 것처럼 고(故) 이재현 경장을 비롯한 네 명의 경찰 영웅의 유가족에게 수여된 ‘경찰영웅패’는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인류가 인공지능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본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생각의 심연에 잠기곤 한다. 인간본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본성을 상징하는 얼굴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외계인을 아무리 달리 그려보아도 눈 코 입이 달린 인간의 모습에서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듯, 인류 역사에서의 다양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인 인권의 구현이라는 아픈 손가락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법 집행자 넘어 인권 존중하는 존재로

특히 올해는 1991년에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개편된 지 33년 되는 해다. 그동안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법과 원칙을 공정하게 집행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팔순을 앞둔 경찰의 우편함에는 단순한 법 집행자에 그치지 말고, 국가를 대표하는 공권력으로서 시민의 기본권을 더욱 촘촘히 보호하라는 요구가 쌓여 있다. 이러한 요구는 경찰의 존재 의미와 직결되는 가장 본질적인 중요한 사안이다.

경찰의 인권수호 의지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경찰은 시민이 모호한 국가권력의 실체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존재다. 현장경찰의 표정 하나하나는 대한민국의 위상과 공권력의 현주소를 그대로 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이 국가권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유치장의 열악한 환경, 수사 미비, 편파적인 수사, 그리고 장애인·미성년자·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최근 경찰 관련 결정례에서는 고문이나 가혹행위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례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배경을 가진 피의자와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섬세한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조사를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에게 맡기고, 체포된 피의자의 수갑 찬 모습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 인격권을 보호하라는 권고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경찰이 단순한 법 집행자 역할을 넘어 한 차원 높게 인권을 존중하는 존재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는 사회적 요구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얼굴을 그리는 작업은 실존적 주체를 특정한 모양과 색깔로 드러내는 과정이다. 자화상은 특정 인물을 사실대로 그리면서도 그들의 다양한 면모를 살리거나 감추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다. 우리가 기억하고 바라는 경찰 이미지는 이러한 모호성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 것이다.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경찰영웅을 찾아 기리는 것은 그들의 헌신이 과거 유물이 아님을 상기시키고, 올바른 경찰정신으로 현재에 살아있어야 함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희생과 헌신은 경찰과 시민 모두에게 중요한 경험과 가치로 남아야 한다.

경찰과 시민이 서로 존중하며 살 미래

제7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만난, 1995년 순직한 또 다른 경찰영웅 고 나성주 경사의 아주 어렸던 딸은 어엿한 30대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들 유가족을 만나 축하하고 위로하면서 주변을 새삼 둘러보게 된다. 경찰 제복의 품격에 자신을 맞춘 듯한 ‘보이는 미소’ 뒤에 숨겨진 경찰의 고됨과 번민이 보이는 듯하다. 경찰은 우리들의 동료시민이자 지난 70여년 동안 함께 일구어온 대한민국의 번영과 자유 그리고 권리를 함께 누려야 할 이웃이다.

이제는 경찰과 시민이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때다. 경찰이 국민의 안전과 기본권을 수호하고, 시민이 경찰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건강한 관계가 구축될 때, 우리는 더욱 안전하고 자유롭고 번영된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상훈 대전대 교수 서울경찰청 인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