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⑧ 대매물도 해품길

섬에서 만나는 드넓은 초원의 길

2024-10-25 13:00:03 게재

소매물도·등대섬 전망

꼬돌개 슬픈 사연도

백섬백길 7코스인 통영의 섬 대매물도 해품길은 섬 둘레를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 길이다. 6.5㎞를 걷는 내내 한없이 푸른 남태평양 바다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소매물도의 형제 섬 대매물도는 면적 1.8㎢, 해안선 길이 5.5㎞로 아담하다. 섬에는 당금과 대항 두 개의 마을이 있다. 섬 전체에 평지가 드물지만 대항마을은 더욱 가파르다.

대매물도. 사진 섬연구소

길은 폐교가 된 당금마을 분교 앞에서 시작되는데 잠깐의 숲길을 빠져나가면 환상처럼 초원이 펼쳐진다. 섬에 드넓은 초원이 있는 것은 과거 인구가 많을 때 화목으로 나무들을 모두 베어낸데다 산비탈까지 개간해서 밭을 일구었기 때문이다. 그 밭들을 묵혀두니 초원이 됐다. 섬에서 만나는 초원은 이방의 감성을 자극한다.

섬 뒤안은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가파른 산비탈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난 잣밤나무나 동백나무 상록수들은 몽실몽실 피어난 초록의 꽃 같다. 그 위로 쏟아지는 남국의 태양 빛이 눈부시다.

길의 정점은 장군봉 전망대다. 장군봉에서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소매물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섬인가를 비로소 알아챌 수 있다. 소매물에서는 등대섬만 볼 수 있으나 대매물도 장군봉에서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함께 볼 수 있다.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이는 법.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조망하기에 장군봉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장군봉 전망대 바로 옆에는 바위굴이 하나 있다. 이 굴은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포진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말기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의 섬들마다 바다의 가미가제 가이텐 자살 특공대(인간 어뢰)를 숨겨 놓기 위해 굴을 팠다. 대매물도나 거제 지심도 등에는 포진지를 만들었다.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제주도와 한반도 남부의 섬들을 총알받이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만든 시설들이다.

대매물도 포진지는 1945년 3월 구축됐다. 포진지 공사에는 충청도에서 끌려온 광부들과 대소매물도 주민들이 강제 징용됐다. 징용된 사람들은 스스로 식량까지 조달해 가며 바위굴을 뚫어 벙커(대피소)와 포진지를 구축하는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일제의 패망 뒤 포진지는 한국 해군이 잠시 진지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지금 장군봉에는 해군도 떠나고 통신회사 기지국이 들어서 있다.

1810년경 조선의 공도정책으로 비어있던 대매물도에 첫 입도민이 들어왔다. 입도민들이 정착해 살만하겠다 싶을 무렵 괴질(콜레라)이 돌았다. 결국 첫 입도민들은 전원이 몰살당했다. 괴질로 한 사람의 생존자도 없이 다 ‘꼬돌아졌다’(쓰러졌다) 해서 생긴 지명이 꼬돌개다.

폐촌이 된 꼬돌개 마을에서 대항마을로 이어진 길은 그야말로 오솔길이다. 슬픈 사연이 깃든 길이지만 겨우 한두 뼘이나 될까 말까 한 좁고 구불구불한 흙길은 발로 밟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손대지 않은 진짜 옛길, 이 길이야말로 문화재다.

대매물도에도 해녀들이 있다. 1925년경부터 제주 해녀들이 종종 원정 물질을 오기 시작했고 1930년에는 제주의 고운식, 오백룡 등이 해녀들을 싣고 와 본격적으로 해녀선을 운영하며 해산물을 채취했다.

이 나라 바다 구석구석 제주 해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당시에는 해산물을 채취하면 마을과 해녀가 반분했다.

지금 남은 해녀들은 그 제주 해녀의 후예들이다. 운 좋으면 선창가에서 해녀들이 갓 물질해온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도 있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