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일어날 산업재해 사고는 일어난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영상 클립을 강의 중에 종종 사용한다. 오래 전에 본 그 영화를 우연히 TV에서 보던 중에 새삼 놀랐다. 산업현장 사고의 속성을 그 영화의 원작자는 세상 모든 사고의 보편적 원리로 이해하고 있었다. 어느 날 벤자민(브래드 피트 분)은 연인 데이지(케이트 블란쳇 분)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간다. 벤자민이 면회 신청을 하고 대기하는 사이에 데이지의 사고 전 상황들이 전개된다.
데이지와 충돌한 택시에 타고 있던 승객이 앞차를 놓치게 된 사건, 택시 운전사의 커피 구입, 도로에 뛰어들어 택시를 급정거하게 만든 남자의 늦잠, 택시 운행을 지연시킨 택배, 운행 중에 승객이 택시를 대기시켜 놓고 본 일, 대기시간을 늘린 가게 종업원의 사건, 발레 연습이 끝나고 나오던 데이지를 기다리게 한 친구의 신발끈 끊어짐, 충돌 전 택시를 잡아 둔 교통신호, 데이지가 나온 건물 뒤의 차선 없는 골목, 충돌 순간 택기기사의 한눈팔기 장면 후에 ‘이 중 한가지만 달랐다면 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삶은 누구도 통제 못하는 상호작용의 연속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세상은 사건의 집합이라고 한 철학자의 통찰과 궤를 같이한다.
사고 전에 전개된 다양한 사건들과 그 조합은 산업현장과 달리 상호작용과 연관성을 찾기 어렵지만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의 조합이라는 본질적 속성은 산업재해와 같다. 또 산업현장의 사고들이 법규와 정부의 역할을 정점으로 하는 다양한 기여 요소들의 알 수 없는 조합임을 감안하면 45개 숫자 중 6개의 조합으로 결정되는 로또 1등 당첨번호 예측보다 쉽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예측된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고의 예측 불가능성은 사전적 정의에 포함돼 있다.
산업안전 분야에서 지목하는 사고원인
산업안전 실무자 강의에서 사고원인을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물으면 운전자의 전방주시 태만과 여주인공의 부주의를 가장 많이 지목한다. 법규에 ‘전방주시’라는 운전자의 의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 정작 법에 정한 바 없다. 없는 것이 타당하다. 운전 중에 운전자는 필요에 따라 전방 후방 측방 모두를 눈으로 살펴야 한다. 게다가 경찰 구급차 등 소리도 들어야 한다.
시각 청각과 같은 인간의 감각은 동시에 작동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인간의 감각은 잘 인지할 수 없는 미세한 시간 분할로 나뉘어 감각된다. 소리가 듣는 순간 시각 정보는 차단된다. 사고 후에야 지목할 수 있는 운전자의 전방주시 태만을 사고 원인으로, 예방 수단을 ‘운전 시 전방주시 철저’로 하는 것은 농담이라 해야 하지 싶다.
여주인공의 부주의도 마찬가지다. 몸을 구부려 손가락으로 신발 주걱을 대신할 때 몸 균형이 틀어져 넘어지거나 바닥을 밟은 사고, 차키를 집에 두고 주차장 차까지 오는 사고, 모임에서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가지고 온 사고 등등. 일상에서 흔하고 경미한 결과여서 사고라고 생각하지도 않겠지만 산업현장의 사고원인으로 지목되는 부주의 실수가 그런 것들이다.
이것이 산업재해에서 모든 사고의 중요원인으로 지목되는 불안전한 행동의 정체다. 그 불안전 행동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법정 안전교육과 작업감시를 하고 있다.
일어날 사고의 예방에 도움될 교육은
법규에 따라 기업의 안전부서에서 주관하는, 직종과 무관한, 집합 안전교육의 효과는 국가 민방위 교육 정도이다. 민방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생애 중에 기억하거나 이행하는 교육 내용이 얼마나 될까. 또 첨단장비로 감시하더라도 사고로 이어질 행동을 사전에 식별해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시도들은 사후 법적 면책에 유용할 순 있겠으나 재해예방 기회비용 낭비다. 이 문제를 이해한 일본은 일반 근로자 안전교육을 폐지했다.
작업의 결과가 안전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작업자가 작업 목적 내용 과정 사용설비와 자신의 역할 수행을 위한 방법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실질적 안전교육이고 안전한 작업동작이 무의식화 되기까지 훈련돼야 한다. 그 외의 안전수칙은 바지 지퍼를 채우는 것과 같은 규범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안전수칙은 생산 부서와 작업자들의 공감이 전제돼야 하고 지속적인 관찰과 분석을 통한 유인과 내용 수정으로 작동성을 높여가야 한다.
안전수칙과 생산효율은 대부분 긴장관계에 있다. 기업 경영의 내면에 속속들이 녹아 있는 효율 추구는 작업자들에게도 수면욕과 같은 인간본성에 속한다. 산업안전을 다루는 정부는 물론, 기업과 안전시장 실무자들이 일어날 사고예방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들의 일에 녹여내야 한다.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