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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가 직면한 심각한 도전들

2024-10-28 13:00:02 게재

노동계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한 때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1996년 말 김영삼정부가 노동법 개악을 시도하자 민주노총은 총파업으로 응수했다. 총파업 투쟁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김영삼정부를 굴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민주노총은 일약 세계 노동운동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민주노총의 영문 약자인 KCTU는 반신자유주의 투쟁 승리를 상징하는 로고가 되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계 양극화 심화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는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노동계를 집어삼켰다. 노동계는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해 정리해고 도입과 비정규직 양산을 위한 법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뒤이어 노동 현장에는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고 비정규직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노조는 더 이상 노동자의 안전한 방패막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노동자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다. 이 모든 결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깊은 강이 흐르는 노동계 양극화가 심화해 갔다.

대기업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조직 노동자들 상당수는 우리 사회 중상류층에 진입했다. 이들은 현상 유지에 집착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욕망을 품기에 이르렀다. 그 반대편에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소외된 다수로 존재해 왔다.

외환위기 이후 수립한 ‘97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대기업 정규직은 확연히 체제 내화한 세력이 되었다. 반면 중소기업에 속한 청년 세대는 97체제와 불화를 거듭한 우리 사회 대표적인 체제 불만 세력이 되었다.

30대의 46%가 이 나라는 희망이 없는 곳이라며 이민을 꿈꾸고 있다는 갤럽의 조사 결과는 이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많은 노동운동가가 강력한 조직력에 이끌려 대기업 정규직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핵심 동력이라는 믿음을 품었었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과연 노동운동은 여전히 세상을 바꿀 핵심 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믿음을 뿌리 채 흔드는 심각한 도전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2022년 말 한국의 주식 투자자 인구수는 1500만을 넘어섰다.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숫자 속에는 다수의 대기업 정규직이 포함되어 있다. 노동계 주축 세력의 상당수가 주식 투자자 지위를 가진 셈이다.

주가는 자본 수익률과 연동된다. 주식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자본과 이해관계에서 일치되기 쉽다. 노동계의 주축 세력이 자아 분열, 조직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다.

AI시대 맞은 노동계 근원적 혁신 추구해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대교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진보적 이념으로 무장한 선배 노동자들이 정년을 맞이해 다투어 퇴장하고 있다. 그 자리를 이념형 노동운동에는 엄격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 탈이념 젊은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이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은 관심사가 아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시대 환경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주력 산업 대부분이 중국에 추월당하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AI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그간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기업들은 AI 로봇으로 인력을 교체하는 대규모 구조 조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는 효과적인 대응책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노동계가 심각한 무기력을 드러내면서 노동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노동계가 생명력을 유지하자면 근원적인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2차산업혁명 시대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도록 환골탈퇴해야 한다. 그 핵심 고리는 자동화를 둘러싼 시각 전환이다.

종전의 사람을 대체하는 자동화를 사람의 창조적 역할 강화 수단으로서 자동화가 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계기로 사람은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 대전환을 함께 이끌어내야 한다. 그럴 때 노사 관계는 제로섬 게임을 보이는 상극 관계가 아니라 함께 살길을 찾는 상생 관계로 바뀔 수 있다.

혁신적 전환은 노동자와 투자자 사이의 자아 분열을 해소해 준다. 탈이념 세대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 AI 시대 생존의 불안에서 벗어나도록 해 준다. 노동운동의 혁신이 절실하면서도 안성맞춤인 시기이다.

박세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