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북한군 우크라이나 파병과 한국의 대응

2024-10-28 13:00:04 게재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선 파병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양상 변화를 넘어 세계 정세에 큰 파문을 예고한다. 한국의 대응 강도에 따라 ‘남북 대리전’ 형국으로 비화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북한군 3000명가량이 러시아에 파병됐고, 오는 12월까지 파병 규모가 총 1만여명에 달할 것이라는 정보를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북한군 우크라이나 파병, 국내는 물론 세계 정세에 파문

북한군이 투입되는 곳은 실제 전쟁터이거나 작전을 지원하는 후방일 수도 있다. 후방에서 기지 경계를 하거나 군수 물자를 나르는 임무를 수행할 가능성도 있겠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방이라면 파장의 크기가 만만찮다. 북한의 대규모 지상군 파병은 국제사회에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우크라이나 전쟁 판도가 달라지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한반도 평화 역시 위협받게 된다. 유럽을 이끄는 지도자의 한 사람인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 북한군을 배치하는 게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의 파병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우크라이나 참전 빌미가 되기 쉽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이 불가피해지면 러시아의 핵 공격을 초래할 위험도 한결 커진다. 북한군 파병은 한국 안보 문제와 맞닿는다.

북한군 참전은 북한의 비핵화 체제에 미칠 영향이 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핵이 존재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이래 비핵화를 위해 대북 제재를 가해왔다. 거부권을 지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북한군을 받아들이면서 대북 제재에서 이탈하는 상황이 됐다. 북한과 러시아는 올해 6월 ‘포괄적 전략적동반자관계조약’을 맺었다.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북한의 파병은 북·러동맹을 근거로 삼는다.

북한이 파병으로 가장 얻고 싶어 하는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맞먹는 확고한 군사동맹일 게 분명하다. 북한이 사실상 핵을 보유했지만, 러시아를 우산으로 삼으면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는 힘이 달라진다. 북한만을 계산에 넣었던 한·미동맹이 이제 북·러를 함께 상대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북한이 단지 군사동맹 명분으로만 파병하지 않았을 게다. 북한이 파병의 반대급부로 러시아로부터 무엇을 받았는지는 당장 확인할 수 없다.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식량, 현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기술, 잠수함 노하우 같은 것들이다. 북한이 끈질기게 요청하는 위성 기술, 방공 관련 군사기술, 항공기 관련 기술, 재래식 전략까지 유추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첨단 미사일과 핵 추진 잠수함 건조 기술이 북한으로 흘러간다면 한국엔 재앙이나 다름없다. 눈에 보이는 군사적 이득만이 아니다. 북한군 파병이 한반도의 군사 균형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우려할 대목의 하나다. 사실 중장기적으로 한반도의 군사 균형에 변화를 초래하는 게 더 큰 문제다. 북·러 결합은 북한을 고립시켜 힘으로 억제한다는 윤석열정부 정책에도 구멍이 뚫린 셈이다. 대통령실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 앞으로 전개될 북한군의 다양한 행동 단계와 북한이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받는 반대급부 같은 걸 고려해 한미일 3국이 단계별 대응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윤석열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수 물자 지원뿐만 아니라 방어용 무기, 공격용 살상 무기 지원 카드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북한 병사가 포로로 잡히면, 우크라이나의 신문(訊問) 과정을 도울 수 있도록 통역관 파견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격용 살상 무기까지 거론한 대통령과 당국자들의 발언을 보면 한국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사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전장에 파병된 북한군 전력을 탐색하고 전술과 교리를 연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모니터링단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북 심리전 분야 요원도 참여해 북한군의 탈영을 유도하는 작전을 수행하고 조언할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반대’ 국민 목소리 흘려들어선 안돼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여론 조사 결과, 80% 이상이 군사적 지원이 아닌 비군사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한국갤럽) 정부는 지혜로운 국민의 목소리를 흘려들어선 안 된다. 국가안보실장과 군 출신 여당 의원이 ‘우크라이나와 협조해 북괴군 부대를 폭격하고 이 자료를 심리전에 써먹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문자 대화까지 나눈 것은 아주 부적절했다. 시중에는 윤 대통령이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북한 카드를 활용하려 한다는 풍문이 파다하다.

김학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