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건 없는 휴학 승인’에도 의정갈등 해소 ‘산넘어 산’

2024-10-30 13:00:06 게재

의대생 단체 “당연한 결과, 달라진 것 없다” … 전공의, 여야의정협의체에 부정적

정부가 의대생이 ‘개인적 사유’로 신청한 휴학에 대해 승인 여부를 대학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의대생의 내년 복귀와 여야의정협의체 등 의정간 대화에 물꼬가 트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최근 여야의정협의체 참여를 결정하면서도 전제 조건으로 의대생의 휴학 승인을 내걸었다.

하지만 의료계를 중심으로 의정갈등의 핵심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수업 복귀와 대화 참여에 대해 회의적 반응이 적지 않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의대증원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대규모 유급·제적 사태는 피해 =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9일 의과대학을 운영하는 40개 대학 총장들과 영상 간담회를 열고 의대생 휴학 승인 여부를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간담회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학생 복귀와 의대 학사 정상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학생들이 개인적인 사유로 신청한 휴학에 대해서는 대학의 자율 판단에 맡겨 승인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의학회와 KAMC의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입장문, 국가거점국립대학교총장협의회의 건의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의 의정갈등 중재안 등 대학현장과 국회 등 사회 각계의 의견을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용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가 의과대학 학사일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그동안 수차례 내놓은 대책이 오히려 의대생들을 자극하면서 올해는물론 내년도 복귀까지 장담할 수 없게 되자 의료계와 대학, 학생의 요구를 전격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는 2학기가 절반 가까이 지나도록 변화가 없자, 지난 6일 ‘의과대학 학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 대책’을 발표하고 ‘2025학년도 복귀’를 전제로 한 조건부 휴학을 승인하기로 했다.

교육계에서는 조건 없는 휴학 조치로 의대생들의 대규모 유급·제적 사태는 피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내년 복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부가 의료계 요구인 ‘조건 없는 의대생 자율 휴학’ 승인을 전향적으로 수용했다. 사진은 29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복귀하면 최대 7500명 수업 난제 풀어야 = 전국 40개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적법한 휴학계를 승인하는 것은 당연지사”라는 입장을 내놨다.

손정호 의대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여지껏 휴학계를 막고 있던 것은 교육부였음을 학생들은 잊지 않을 것”이라며 “그 외 변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 다른 의대 교수 단체도 교육부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의대생들이 복귀할 것으로 보는 의견은 많지 않다.

김성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대변인은 “(교육부의 결정과 의대생 복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며 “원래 해줬어야 하는 걸 해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므로, 의대생들이 내년에 복귀할지는 본인들의 판단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최창민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도 “휴학 승인은 당연한 것”이라며 “아직 학생이랑 전공의 마음 돌리기는 어려워 보이고, 올해 정원에 대해 논의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사태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별도 성명에서 “휴학 승인은 당연하고, 학생들을 휴학으로 내몬 상황의 책임자는 대오각성하라”며 “앞으로의 보건의료정책은 젊은 의학도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령 의대생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수업을 듣지 못한 의대생과 내년도 증원된 의대생을 합한 1학년생 숫자는 최대 7500명에 이른다. 학교로서는 이들을 교육해야 하는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반쪽’ 여야의정협의회 불가피할 듯 = 의료계에서 요구해 온 의대생 휴학 승인을 교육부에서 수용하면서 여야의정협의체 출범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반쪽 출범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 22일 대한의학회와 KAMC는 여야의정협의체 참여 전제 조건으로 의대생의 휴학 승인을 내걸었다. 교육부의 이번 조치로 ‘전제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에 여야의정협의체 관련 논의도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KAMC는 “휴학 승인이 이뤄짐에 따라 의료 현안 해결을 위한 여야의정의 대화가 시작되길 바란다”며 “교육의 당사자로서 학생과 교수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고, 대학의 학사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의학회는 “협의체 참여를 두고 의료계 내 다양한 우려 목소리가 있음을 알고,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걱정도 이해한다”면서도 “현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지 않으면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 붕괴는 불을 보듯 명확하다”며 대화 의지를 드러냈다.

반면 의정갈등의 핵심인 전공의들은 협의체 참여에 부정적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내년도 증원 백지화’라는 기존의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특히 전공의들은 여야의정협의체를 정부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요식행위일 수 있다며 진정성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여기에 의대생들도 전공의와 뜻을 같이하고 있어 협의체 참여를 비롯해 정부와 대화에 당장 나설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또 더불어민주당은 “전공의와 의대생 참여 없이는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반쪽짜리 출범’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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