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생물다양성
미래 미지의 ‘감염병 X’ 경고…역인수공통감염병 대비도 시급
동물과 사람 재조합 통한 돌연변이 바이러스 발생 위험
“상위 단계의 원헬스 통합 관리 등 속도감 있는 대응 필요”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후위기는 생물다양성을 위협한다. 손실된 생물다양성은 또다시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기후위기로 인한 다양한 변화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물다양성 보전이 필수다. 영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경제적 성공의 잣대로 생물다양성을 포함시키는 논의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자연자본 가치가 커지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신종 감염병의 출현 주기가 짧아질 거라는 예상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류 유래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1)의 대규모 포유류 전파 사례 그리고 유례없는 종간 전파 사례 등이 더욱 새로운 감염병 X의 출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일 송대섭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바이러스학 전공)는 이렇게 말했다. 감염병 X는 세계보건기구(WHO)가 2018년 2월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미래에 대유행할 수 있는 가상의 신종 감염병을 지칭한다. 알파벳 X를 사용해 미지의 존재를 나타냈다.
송 교수는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는 동물에서 유래된 인수공통바이러스인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서 사람 감염이 폭발적으로 유발이 됐다”며 “하지만 반려동물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거의 모든 반려동물 감염 사례가 사람으로부터 전파되는 역인수공통감염병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방향 감염이 반복되면 동물과 사람에서 재조합을 통한 돌연변이 바이러스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위험하다”며 “원헬스(One Health)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본질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인수공통감염병뿐만 아니라 역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대비도 함께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원헬스는 사람 동물 생태계 사이의 연계를 통하여 모두에게 최적의 건강을 제공하기 위한 다학제적 협력 전략이다. 세계보건기구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유엔환경계획 등과 같은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주요 7개국(G7) △주요 20개국(G2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과 같은 국제 경제협의체에서도 원헬스를 주요 의제로 다룬다.
◆기후변화로 야생동물 생활권 변화, 새로운 질병 유입 가능성 = “기후변화에 따른 박쥐 분포와 다양성의 변화로 인한 질병 확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야생동물 생활권에 변화가 생기면서 사람의 생활권과 겹치고, 이로 인해 새로운 질병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죠. 원헬스 관점으로의 접근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차지호 의원실 주최로 열린 ‘미래 패치워크 세미나 시리즈 ③ 글로벌 위기적응: 생태계 X 팬데믹’ 토론회에서 이후승 한국환경연구원 자연환경연구실 연구위원이 한 말이다. ‘미래 패치워크 세미나 시리즈’는 기후변화 팬데믹 분쟁 자연재해 경제위기 인구위기 등 다중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가 토론 중심 연속 연구회다.
전세계 신종감염병의 60% 이상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zoonosis)된다고 알려진다. 또한 박쥐는 가장 많은 인수공통바이러스를 보유한 생물로 꼽힌다. 박쥐 바이러스 중 1/3 이상이 코로나바이러스이며, 전세계 박쥐들이 약 3000개 이상을 보유한다고 추정된다. 인간을 감염시키는 몇몇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제학술지 ‘종합환경과학(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의 논문 ‘전세계 박쥐 다양성의 변화, SARS-CoV-1 및 SARS-CoV-2 출현에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 시사’에 따르면, 약 90년간 중국 윈난성과 미얀마 라오스 접경 지역에서 박쥐 종 다양성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중앙아프리카와 중남미 일부 지역에서도 박쥐 분포가 늘어났다. 기후변화로 박쥐의 지리적 분포가 달라지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전과 다른 지역에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SARS-CoV-1은 2002~2003년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을 일으킨 코로나바이러스다. SARS-CoV-2는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을 일으킨 바이러스다.
이 연구는 기후변화가 식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한 도구인 ‘BIOME4 전지구 식생 모델’ 등을 사용해 전세계 박쥐 분포가 1901~1930년과 1990~2019년 두 기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해당 지역에서 박쥐 약 40종이 증가했다. 논문에서는 각 박쥐 종이 평균 2.67(±1.38)개의 코로나바이러스를 보유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100개(±50)의 새로운 박쥐 유래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기간 동안 해당 지역에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생물학적 특성과 바이러스 위험 요인 종합적으로 고려한 새 대응 방안 필요 = 문제는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한반도는 동아시아지역의 중요 철새 경로이며 환경 변화에 민감한 지역이다.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동시에 각종 질병에 취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위원은 “철새들은 극지방에 모였다가 다시 그들의 지역으로 이동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전지구적인 공동 협력은 필수”라며 “생물학적 특성과 바이러스 위험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질병에 대한 신속한 평가체계를 마련함으로써 현장 기반의 대응방안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국내 조류다양성 현황을 기반으로 새로운 대응방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류 다양성이 높은 지역에 닭 오리 등을 사육하는 가금시설 밀도가 높은 편이다. 조류 다양성이 높은 지역에 신규로 가금시설 허가를 내주는 일은 피하고 대신 다양성이 낮은 지역으로 종전의 가금시설을 이동하는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위원은 “영국의 조류인플루엔자 대응 예보는 매개 대상 종과 피해 대상 종의 현황 자료에 기반해 이뤄지고 있다”며 “야생조류와 사육조류를 구분해 밀도 등 현황 분석을 상시적으로 실시하고 사전 예방적 대응 정책 결정 근거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인간에서 동물로 전파 사례 64% 연구 결과도 = 신종 및 재출현 감염병 대부분 인간이 아닌 척추동물에서 유래한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게 통념이다. 하지만 인간에서 동물로 전파되는 사례가 더 많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의 논문 ‘바이러스의 숙주 간 전파를 결정짓는 진화적 요인과 특성’에 따르면, 인간 관련 숙주 전환 사례 599건 중 인간에서 동물로 전파된 경우(역인수공통감염)가 383건으로 64%를 차지했다. 반면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파된 경우(인수공통감염)는 216건으로 36%에 그쳤다.
이 연구는 전세계 바이러스 유전체 정보를 수집 저장 공유하는 ‘NCBI 바이러스 데이터베이스’에서 1164만개 이상의 바이러스 시퀀스를 수집한 뒤 최대 우도 계통발생학적 분석 등을 통해 이뤄졌다.
바이러스 시퀀스는 바이러스 유전물질을 구성하는 염기서열로 쉽게 얘기하면 바이러스의 지문이나 신분증과 같은 역할이다. 최대 우도 계통발생학적 분석은 서로 다른 바이러스들이 어떻게 진화적으로 연결되는지 찾아내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바이러스들의 유전자 서열 등을 분석해 가족 관계도를 그려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연구 결과는 △SARS-CoV-2 데이터가 과도하게 많고 △지역적 편중이 심하고 △최근 숙주 전환 사례만 분석 가능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감염병 경향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통된 지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원헬스 관점의 접근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10월 30일 김종희 질병관리청 인수공통감염병관리과 과장은 “아직 장기 자료가 축적되지 않은 특성상 기후변화가 각종 매개질환 등에 미치는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며 “기후변화가 국내 감염병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정량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전파 가능성은 증가할 수 있으므로 대비가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헬스는 다부처 협력이 필수지만 부처별로 관련 법령 등이 다르고 상황별로 우선순위가 동일하지 않아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전 부처가 다 같이 같은 속도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상위 단계의 원헬스 통합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