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제도 어디까지 왔나
‘존엄한 생애 마무리' 사전의향서 작성자 250만명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서 참여 많아져야 … 자기결정, 임종단계에서 생애말기로 확장 필요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기대하는 인식 속에서 존엄하고 편안한 생애 마무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른 정책적 대응도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다.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가 마련됐다. 올해 8월까지 250만명이 넘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다. 그리고 임종 과정에서도 가족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환자의 자기결정 비중이 늘고 있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는 ‘누구나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받는 사회’를 목표로 한 ‘제2차 호스피스 연명의료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과 이행 시기를 임종기에서 생애말기로 앞당기는 개정안이 발의돼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관련해서 국민의 존엄한 생애 마무리를 위해 필요한 정책 방향을 다루면서 전문가들의 제시하는 개선 방안들을 살펴본다.
존엄한 생애 마무리를 위한 정책 추진으로 도입된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성과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그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의료기관 윤리위원회 설치 확대와 의료인 교육 늘리기 등 구체적인 관리방안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 지역사회 건강한 노후생활 지원에 존엄한 생애 마무리 사업이 포함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나온다.
5일 조정숙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센터장에 따르면 250만명 넘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등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각 개인이 임종기를 맞이했을 때 자신의 의사에 따라 실제 현장에서 시행이 되려면 의료기관 윤리위원회 설치 확대, 의료인의 교육 확대, 사각지대에 있는 1인가구 등의 제도 진입, 등록기관과 상담사의 질·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일학 연세대의대 의료법윤리학과 부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포럼 10월호에 게재한 ‘존엄한 생애말기를 위한 연명의료결정제도의 방향’ 보고서에서 “궁극적으로 연명의료결정제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제도”라며 “이를 위해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와 지역사회 자원 등을 통합적으로 연계하고 환자와 가족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명의료결정제도 안정적 발전 = 우리나라 연명의료결정제도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8년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사건을 계기로 2016년 관련법이 제정된 이후 시행되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진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을 우선 존중해 생애를 존엄하게 마무리 할 수 있게 한다.
제도 도입 이후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으로 지정됐다. 연명의료관리센터가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 운영 △사전연명의료전향서 등록기관 및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운영관리 △종사자 교육 △대국민 홍보 △정책 연구 등을 수행한다.
그동안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이 늘어나고 그 의향서를 작성한 인원이 대폭 늘어난 점이 큰 변화다.
조 연명의료센터장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는 보건소 의료기관 비영리기관 및 단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건강보험공단 지역기관, 노인복지관이 있다. 올 6월말 모두 745개 기관이 지정됐다. 노인복지관의 지정 활동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한 고령층의 접근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사망자의 70% 이상 발생하는 의료기관의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가 시급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2023년 의료기관 종별 사망자 비율을 살펴보면 종합병원 36%, 요양병원 34%, 상급종합병원 23%, 병원 6%, 의원 1% 순이다.
이 가운데 요양병원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율이 가장 빠르게 늘고 있지만 사망자 비율 대비 설치율이 낮다. 요양병원 중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한 경우는 9.7%에 불과하다. 이에 센터 등은 요양병원 제도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현황을 보면 2018년 10만명을 시작으로 해마다 늘었다. 2023년 57만이 넘게 작성해 누적 240만명 넘게 작성했다. 그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 중 18.5% 넘게 작성했고 노인인구 5명당 약 1명이 작성하는 등 빠른 증가세를 보인다. 작성자 중에 노인이 75%를, 여성이 67.3%를 작성했다.
의료기관 안에서 말기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를 계획하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도도 해마다 늘었다. 시행 첫해 1만5000건을 시작으로 2023년에는 2만5000건, 올 6월까지 누적 14만건 넘었다.
앞으로도 이용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대국민인식도 조사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미작성자 중 ‘작성의사 있다’가 2019년 37.6%에서 2022년 64.9%로 상승 추세다.
관련해서 조 센터장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확인을 통한 이행 등이 가능하도록 전체 종합병원과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 증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기대수명 만성질환 증가로 존엄한 생애 마무리 준비 여유 생겨 = 연명의료결정제도와 관련된 정책 환경이 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희년 보사연 보건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연명의료결정제도 관련 정책환경 변화와 시사점’보고서에서 “만성질환이 주요 사망 원인으로 부각되면서 죽음을 준비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특히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죽음중심에서 삶 중심으로 전환해 국민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사망자는 37만2939명에 이른다. 그 중 80세 이상의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 중 53.8%를 차지한다. 10년 전에 비행 약 17.0%p 늘었다. 그 만큼 한국사회인구의 고령화는 예비사망자의 증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이 늘어나 개인에게는 삶이 연장됐지만 사회적으로 예비사망자의 증가로 정책대응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국내 사망자 원인이 고의적 자해(자살)을 빼고 암 심장 간 뇌혈관질환 등으로 나타났다. 질병의 특징은 ‘만성적’이다. 뇌혈관질환이나 심장질환은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경우도 많지만 당뇨병 고혈압 환자에게서 빈번히 발생하니 만성질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질환이 만성적으로 관리되어야 하다보니 자연스레 죽음을 스스로 준비할 시간적 여유이 생긴다. 이런 배경으로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제도적 환경으로는 2023년 사망한 사람이 사망한 장소는 의료기관이 75.4%라는 점이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여정이 과연 아름답고 존엄하게 보호될 수 있는지를 사회가 고민할 수 있도록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문화 조성자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여정이 과연 아름답고 존엄하게 보호될 수 있는지를 사회가 고민할 수 있도록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문화 조성자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
◆노인이 선호하는 생애 마무리 욕구 따라야 = 올 4월 발표한 복지부의 제2차 호스피스 연명의료종합계획(2024~2028)은 이용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제도 이행 기반을 강화 그리고 인식 개선 및 확산을 과제로 삼았다. 인프라 확충에 집중한 정착기를 넘어 제도의 질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이용자의 요구에 맞춰 정책과제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국민과 가족이 생애 말기 과정에서 자기결정 존중을 체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85.6%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 7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65세 이상자는 약 18.7%에 불과하다. 원하는 임종 장소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2019년 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가장 선호하는 임종 장소는 자택 37.7%, 병원 19.3%, 호스피스기관 17.4%, 요양병원 13.1%, 장기요양시설 12.5% 순이었다. 실제 65세 이상 사망자의 77.4%는 의료기관에서, 14.0%는 주택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노인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가족 지인에게 부담 주지 않는 죽음’이 90.6%, ‘신체 정신적 고통이 없는 죽음’이 90.5%, ‘임종 전후 스스로 상황을 정리하는 죽음’ 89.0%이었다.
고든솔 보사연 보건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죽음의 질과 웰다잉에 대한 관심, 사회적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 국민과 제도를 시행하는 참여자의 정책적 요구를 면밀히 파악하고 이를 반영한 정책과제가 체계적으로 추진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생애 말기 미리 준비하는 문화 활성화 = 연명의료결정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집행 과정의 일관성과 돌봄 수준 향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교수에 따르면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여전히 △이해 부족 △무의미한 연명치료와 안락사 존엄사 혼동 등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참여 문화를 조성하고 의료진의 인식 개선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제도 사용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삶의 마지막 수일 수주 동안의 의학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건으로 연명의료결정을 고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죽음이나 생애말기 돌봄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말기뿐만 아니라 건강할 때부터 삶의 마직막에 대한 준비와 논의를 시작하는 ‘사전돌봄계획’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한 사전돌봄계획에 대한 대국민교육과 홍보를 강화하고 의료진과의 상담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병철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국민의 존엄하고 편안한 생애 말기를 위해 우선 신체적 고통이나 물리적 통증 외에도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의 심리적·감정적 치유를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윤 과장은 “나아가 생애 말기에 관한 긍정적 문화 조성, 그리고 사전의 충분한 준비를 통해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의 심리적·정신적 고통을 최소화하고 사별 가족의 조기 사회복귀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 조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