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칼럼

노벨상은 어떻게 받는가

2024-11-07 13:00:02 게재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존 홉필드는 원래 고체물질의 성질을 양자역학 이론을 이용해 탐구하던 물리학자였다.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더니 지도교수가 아직 제대로 이해 안된 실험 결과 몇 개를 알려주면서 그중 하나를 탐구해보라고 했다. 그가 몇년 간 고민 끝에 제안한 ‘폴라리톤’이란 존재는 지금도 고체물리학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중요한 개념이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엔 벨 연구소에서 고체물리학을 개척하는 천재들과 교류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고체 물리 이론 부서의 수장이었던 헤링의 제안을 따라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는 실험 물리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아직 해결 안 된 난제를 찾아 이론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에 몰두했다.

1968년, 35세의 그는 더 이상 고체물리학에서는 자신의 흥미를 끌만한 문제가 없다 싶자 다른 관심 분야를 찾기 시작한다. 홉필드는 프린스턴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 헤모글로빈의 성질을 물리학적 실험 도구를 이용해 연구하는 슐만이란 학자를 만난다. 새로운 분야에서 만난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생물학 분야의 난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가 박사과정 때부터 다루었던 고체물리학의 문제는 물질의 정적인 상태, 즉 지금도 그렇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평형상태의 성질이었다. 반면 생물학의 주제는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비평형 상태였다.

홉필드가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는 동안 특별히 잘 구사했던 기술은 어떤 복잡한 현상을 잘 들여다본 후 그 현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간단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생물학만 공부한 학자는 흉내내기 힘든 그의 독특한 능력은 비평형의 물질 상태를 묘사하는 모델을 만드는 데서 빛나기 시작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문제 찾기’가 먼저

1977년 프린스턴 대학의 신경과학자, 뇌과학자 모임에 합류한 홉필드는 본격적으로 그의 지식과 경험을 신경망 이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모임에 합류한지 몇년 뒤인 1982년, 그는 ‘뉴런(neuron)’이란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논문을 발표한다. 올해 노벨상 수상의 근간이 된 이 논문에서 신경(neural)이란 단어와 입자라는 의미를 갖는 접미사 on을 합쳐 ‘신경입자’ 즉 뉴런이란 개념을 제안했을 뿐 아니라 신경입자끼리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모델도 제시한다.

‘스핀 유리’로 알려진 복잡한 물리계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1975년 등장한 쉐링턴-커크패트릭 모델을 살짝 변형한 이 모델은 홉필드 모델로 알려져 있다. 이와 비슷한 모델을 컴퓨터 계산의 방법론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중요한 통찰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이론을 발전시킨 사람은 올해 노벨물리학상 공동수상자 힌튼이다.

홉필드란 과학자의 인생 여정에서 돋보이는 서사는 ‘내가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 여정의 대부분은 먼 곳이 아니라 자신이 몸 담았던 학교와 연구소에서 이루어졌다.

홉필드만의 얘기가 아니다. 필자의 지도교수였던 데이비드 사울레스는 ‘양자 홀 효과’라는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는 이론을 만든 업적으로 201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어느날 같은 학과에 있는 원자물리학 전공자로 노벨상을 받은 교수가 “어떻게 당신들이 다루는 고체라는 지저분한 물질에서 내가 연구하는 깔끔한 원자계에서나 가능한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단 말이오?”란 질문 겸 도전을 받았다고 한다.

스쳐지나가는 농담같은 질문을 마음에 품고 굴리며 그에 대한 대답을 찾은 것이 바로 양자 홀 효과를 설명하는 사울레스 이론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고, 보편적이다”는 말은 영화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는 평생 워싱턴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단백질 접힘이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몰두했다. 스승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그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중요한 업적을 낸 백민경 서울대 화학과 교수를 비롯, 노벨상에 매우 근접한 업적을 낸 한국인에 대한 소개가 올해도 예외없이 이어졌다. 노벨상 수상자와 거리가 좁혀진만큼 우리도 노벨상에 가까워졌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왕관의 무게 견딜 수 있어야 왕이 돼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과연 그럴까’ 자문해보고 싶다. 노벨상 수상을 한 나라를 세우는 일에 비유한다면 노벨상 수상자는 왕이고 그의 연구를 도와 중요한 업적을 낸 제자들은 개국공신이다. 개국공신은 왕과 다르다. 세익스피어가 ‘헨리4세’에서 말했듯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홉필드는 “어떤 문제를 선택하느냐가 그 과학자의 성취를 결정한다”고 했다. 문제 선택에 신중해야 하고,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으로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하고, 그런 손익 계산이 끝난 뒤엔 과감히 문제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 강은 13살 어린 나이에 ‘광주 학살'이라는 비극을 사진을 통해 접하고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품었다고 한다. 참혹한 시신, 그 옆에 총상자를 위해 헌혈을 하려고 끝없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인간 안에 참혹한 폭력과 이타심이 모두 있다는 게 양립할 수 없는 숙제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필자가 스무살 때에도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차마 직시할 수 없었던 사진을 13살 소녀였던 한 강 작가는 직시하고, 그 충격에서 비롯된 개인적 서사를 보편적인 언어와 감성으로 풀어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작가적 재능과 더불어 그 참혹한 이야기를 세상과 공유하겠다는 대단한 용기에 대한 인정이다.

과연 우리 과학계에 감히 들여다 볼 용기가 나지 않는 문제를 선택하고 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우리가 스스로 쓰고 있는 과학적 서사가 있는지, 직접 나라를 세우려는 사람이 있는지 돌아본다. 왕관의 무게를 견딜 용기 있는 사람이 있어야 왕이 나온다.

한정훈 성균관대학교 교수 물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