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현금 늘리는 이유 왜?
금융위기 이전 모습 … 시장 비관인지 궁금증
WSJ “버크셔 규모 커져 변화 불가피 측면도”
전세계 가장 많은 추종자를 갖고 있는 투자계의 현인 워런 버핏이 지속적으로 현금보유량을 늘리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1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주식보유 기간은 ‘영원하다(forever)’고 말하던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현재 3250억달러(약 456조원)에 달하는 현금·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은 1년 이하 미국채 단기물(treasury bill)이다.
배당금과 이자수익을 쌓아두는 것을 넘어 지난 여러달 동안 애플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식을 공세적으로 매도했다. 그리고 6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사들이는 것도 중단했다.
WSJ는 “이는 투자자들에게 시장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버크셔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버핏과 작고한 사업파트너 찰리 멍거는 주식시장에서 140배 수익을 냈지만 단타를 통해 이룬 성과가 아니다. 멍거의 가장 유명한 말은 “복리의 마법을 불필요하게 중단하지 마라”이다. 버크셔를 추종하는 투자자들은 ‘언제’보다 ‘무엇’을 사고파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늘 낙관적이고 인내심 많게 보이는 버핏도 이전에 다른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다. 10여년 동안 연평균 29.5% 복리 수익률을 기록했던 투자조합을 1969년 해산했다. 시장에 너무 많은 거품이 끼어 있다는 이유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년 동안에도 투자 대신 현금을 보유하며 기회를 엿보기도 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재무역사’를 쓴 애덤 미드는 “버핏은 시장이 요동치며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높아만 가는 지금의 주식가치가 약세장에 들어서거나 붕괴 직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현재의 밸류에이션을 넓게 보면 향후 수년 동안 수익률이 지지부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골드만삭스 전략가 데이비드 코스틴은 최근 보고서에서 향후 10년 S&P500 수익률이 연평균 3%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2차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연평균 수익률의 1/3이 안되는 수준이다.
자산운용사 뱅가드도 최근 미국 대형주들의 연평균 수익률이 향후 10년 3~5%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성장주 수익률은 0.1~2.1%로 내다봤다. 로버트 실러 교수의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 역시 물가요인을 배제하면 연평균 약 0.5%에 그친다. 코스틴의 예상과 비슷하다.
미국경제 규모 대비 상장주식가치 비율을 따지는 버핏지수도 마찬가지다. 미국 장내주식과 장외주식을 총망라한 ‘월셔5000주가지수’를 기반으로 하면 현재 약 200%다. 이는 기술거품 절정기보다 더 커졌음을 보여준다.
한편 버핏의 현금보유 전략은 시장상황을 넘어 버크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버크셔의 가치는 1조달러에 달한다. 변화가 불가피한 규모에 이르렀다. 94세 버핏이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할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버크셔는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데 주저함이 없다. 거의 대부분 자사주매입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현재 자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게 너무 비싸진 상황이다. 또 과거 유지했던 높은 장기수익률을 재연하기 어려운 시점에 다다랐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줘야 한다.
미드는 “자사주매입보다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추산한다. WSJ는 “버크셔 역시 복리의 마법을 중단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