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중 관세, 현장선 어떤일 벌어졌나
트레일러섀시 놓고 피츠뷰-엠포리아 관세 이전투구 … 블룸버그 “모두가 지는 게임 전락”
관세라는 유령이 전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로 미국의 무역국들이 관세폭탄 두려움에 떨고 있다. 트럼프는 고율관세를 통해 미국인 일자리를 지키고 늘리겠다고 장담한다. 그렇다면 과거 미국의 관세는 실제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미국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관세가 실제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살피기 위해 앨라배마주 피츠뷰, 버지니아주 엠포리아를 관찰했다. 피츠뷰는 인구 1000여명, 엠포리아는 5500여명이 사는 시골 소도시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두 도시 소재 기업들 역시 수년간 관세싸움을 벌이고 있다. 피츠뷰와 엠포리아 모두 트레일러 섀시 제조공장을 두고 있다. 트레일러 섀시는 수출입 컨테이너를 싣는 전용차량에 장착하는 장비다. 1950년대 발명된 40피트 강철 컨테이너는 국제운송에 혁명을 일으켰고 세계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 배로 실어나른 컨테이너박스를 육지에 내린 뒤 트레일러 섀시 위에 올리면 트럭들이 컨테이너와 그 안에 담긴 제품을 미 전역으로 운반한다. 두 도시 기업들은 각각 자신이 진정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이고 상대는 중국산 수입품으로 위장하고 있다며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져 트레일러가 부족해지자 컨테이너 더미들이 각 항구에 발이 묶인 바 있다. 이로 인해 물가급등과 생활비 위기가 발생했고, 결국 이 여파는 지난주 치러진 미국 대선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 시골 소도시 간 관세싸움
피츠뷰에는 피츠 엔터프라이즈라는 기업이 있다. 창업자 앤드류 피츠는 1976년 임업용 트레일러를 제작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2002년 아들 제프 피츠가 회사를 이어받았다. 2017년 트레일러 섀시 시장에 진출해 40피트 트레일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 초창기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2018년 값싼 중국산 트레일러 섀시가 시장에 넘쳐나면서 피츠는 도태될 처지에 몰렸다. 피츠 사장인 JP피어슨은 “가격을 아무리 낮춰도 소용이 없었다. 중국산 대비 경쟁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팬데믹 절정기인 2020년 7월, 피츠는 다른 4곳의 미국 트레일러 섀시 제조업체들과 함께 워싱턴 정가를 상대로 중국 국영 컨테이너 대기업 ‘중국국제해양컨테이너그룹(CIMC)’이 만든 섀시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수년 동안 전세계 컨테이너 운송시장의 강자였던 CIMC는 7만~8만대 규모의 미국시장에서 매년 4만5000대 넘는 트레일러 섀시를 팔았다. 섀시 제작에 사용되는 전기, 강철 및 기타 필수품에 대한 보조금 덕분에 CIMC는 미국 제조업체가 따라올 수 없는 낮은 가격으로 섀시를 판매했다.
미정부는 청원 1년이 채 되지 않아 자국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2021년 5월 미정부는 트럼프정부 시절 부과된 25% 관세에 덧붙여 중국산 트레일러에 220% 넘는 관세를 추가했다. 개당 1만달러던 중국산 트레일러 섀시 가격이 갑자기 3만5000달러에 육박했다. 팬데믹에 섀시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산 공급이 중단되면서 수급 불균형이 커졌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관세폭탄을 반기며 ‘수백명의 신규인력을 고용해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트럭운송 회사와 항만 운영업체들은 새로운 관세와 섀시 수입중단으로 이미 심각한 공급망 문제가 더욱 악화됐다며 거센 불만을 터뜨렸다. 전문가들도 섀시 제조사 수천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수백만명 미국 소비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심상찮음을 감지한 미국 섀시 제조사들은 그해 10월 바이든정부에 대중국 고율관세를 유지해 달라고 간청했다. 이들은 “CIMC의 지배력이 경제안보를 위협하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 트레일러를 만드는 것이 국가적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정부는 고율관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서로 “중국산 썼다”며 이전투구
중국 CIMC는 직수출과 현지화 전략을 병행하고 있었다. 2015년 1월 대서양 연안항구와 물류허브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버지니아주 엠포리아에 첫 미국공장을 지었다. 이 회사는 엠포리아에서 시간당 18~20달러의 임금을 받는 1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CIMC는 미국 자회사의 이름을 ‘CIE매뉴팩처링’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미정부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중국 이외의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2000만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태국공장을 통해 유럽과 한국산 철강으로 프레임을 만들었다. 엠포리아공장으로 배송된 프레임은 켄터키주 프랭크포트에서 제조된 차축, 미시간주 머스케곤에서 제작된 트레일러 고정 랜딩기어,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에서 생산된 서스펜션 키트와 결합돼 완성됐다.
CIE의 CEO 트레버 애쉬는 자사의 전략을 1990년대 미국의 수입장벽을 넘기 위해 혼다나 도요타 등 일본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고 수천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에 비유했다. 2023년 기준 CIE는 미국 내 2곳의 공장에서 약 400여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한편 CIMC의 직수출 트레일러가 시장에서 퇴출되자 피츠 엔터프라이즈는 약 16개월 동안 베트남 트룽하이그룹이 만든 트레일러 섀시 1만8000개를 수입해 고객에게 판매했다. 트룽하이는 한국의 기아, 일본의 마쓰다, 프랑스 푸조 등의 자동차와 버스, 트럭을 만드는 베트남 비상장기업이다.
CIE는 이 섀시에 중국산 철강과 부품, 원자재가 포함돼 있다고 의심했다. 때문에 피츠가 로비를 통해 CIMC의 섀시에 부과했던 것과 동일한 관세가 피츠의 수입산 섀시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봤다. 2022년 CIE 모기업인 CIMC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USCBP)에 이를 신고했고 공식조사로 이어졌다. 2023년 3월 USCBP는 피츠가 수입한 베트남 트레일러에 중국산 부품이 포함돼 있다며 관세를 부과했다.
피츠는 강력히 이의를 제기했지만 소용없었다. USCBP 판결로 연간 5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던 회사의 예상 총매출 2억5000만달러가 사라졌다. 효율성을 높이고 최첨단 장비를 추가하기 위해 1500만달러를 투자하려던 계획도 미뤄야 했다. 보호무역주의로 이제 막 이익을 얻으려던 피츠는 갑자기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피츠는 USCBP가 관세규정을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하며 지난해 정부를 상대로 연방법원에 불복소송을 제기했다.
관세로 일자리 외려 줄어
피츠와 다른 4곳의 미국 제조업체는 CIE를 상대로도 반격에 나섰다. CIE가 프레임을 만드는 태국공장이 중국산 트레일러의 대미 수출을 감추기 위한 위장공장이라고 주장하며 USCBP에 새로운 소를 제기했다. 또 다시 USCBP가 조사에 나섰다.
이 주장이 사실일 경우 CIE는 수백만달러의 관세를 내야 했다. 국내조사가 진행되는 2023년 8월까지 신규 프레임 수입을 중단하고 미국 내 생산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하루 30개에 이르던 공장 생산량이 2023년 10월 기준 반토막났다. CIE는 임시직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정규직 62명에 대한 해고를 피하기 위해 근무시간을 줄였다.
USCBP 조사관들은 2023년 12월 태국공장을 방문조사할 예정이었지만 올해 4월로 연기됐다. 결국 CIE는 관세탈루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고 다시 영업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뒤였다. 올해 1월 엠포리아공장 직원 대부분을 해고했다.
애쉬 CEO는 USCBP 규정에 따라 조사를 받게 되면 일단 유죄로 간주된다고 비판했다. CIE에 대한 조사는 1년 이상 걸렸다. 생산둔화와 뒤이은 생산중단으로 회사는 1억달러 이상의 매출손실을 입었다. 애쉬는 “200곳 이상의 미국인 가족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현재는 트럭운송 경기침체와 치솟는 팬데믹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쌓은 섀시 과잉으로 트레일러 시장이 붕괴된 상황”이라며 “결국 엠포리아의 CIE와 피츠뷰의 피츠 엔터프라이즈 모두가 진 게임이 됐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