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항소심, 항소이유서에 집중해야”
사법정책자문위, 대법원장에 개선 건의
형사재판, 피고인 불출석 재판 요건 완화도
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민사 항소심과 형사 재판의 진행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재판 장기화를 방지하도록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민사 항소심의 경우 항소이유를 중심으로 집중 심리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불출석할 경우 재판의 장기화를 방지하기 위한 불출석 재판 요건을 완화하는 등 공판중심주의 개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13일 오후 6차 회의를 열고 민사 재판 항소심 심리 모델 개선과 공판중심주의의 적정한 운영에 대해 논의한 뒤 이 같은 내용의 건의문을 채택했다.
우선 민사 항소심과 관련해 자문위는 “항소심 재판의 장기화로 발생할 수 있는 고충과 사법 신뢰 저하 등을 고려해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심리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항소이유서 제출 제도의 도입과 사건 증가 등 변화된 사법 환경을 고려해 항소이유를 중심으로 하는 심리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사소송법 개정으로 내년 3월부터는 ‘항소이유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2심 판단을 받을 수 있다. 항소 기록 접수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40일 안에 항소이유서를 내지 않으면 항소가 각하된다. 이러한 변화에 앞서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것이다.
자문위는 제출된 ‘항소이유서’에 집중해 심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문위는 “항소인이 기간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그에 기반한 증거를 일괄 신청한 뒤 체계적으로 조사해 재판 지연을 막아야 한다”면서 “항소이유에 대한 답변을 판결서에 작성해 국민들이 판결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형사 재판과 관련해서는 재판의 장기화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해 공판중심주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했다. 공판중심주의는 형사 재판에서 모든 증거를 재판에 집중시키고 공판 중 확인된 증거를 토대로 판결하는 원칙이다.
자문위는 증거신청과 채택은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하고, 증인신문은 쟁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주요 사건에서 증인을 수십명씩 신문하고 수백 권의 수사 기록을 일일이 조사하느라 재판이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자는 차원이다.
또 서증(서류 증거) 조사도 합리화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녹음파일 등 증거조사를 할 때 파일 전체를 법정에서 전부 재생하는 대법원 형사소송규칙(134조·144조)도 개정을 추진한다. 양측이 모두 동의할 땐 녹취서를 읽는 등 간략하게 대체할 수 있지만, 한쪽이 원칙 준수를 요구하면 증거조사를 새로 해야 했다. 실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에서는 녹음 재생에만 7개월 가까운 시일이 걸렸다.
아울러 “피고인이 자백하는 경우 외에도 쌍방 당사자가 동의하는 경우 간이공판절차에 회부할 수 있는 새로운 요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간이공판절차란 증거조사를 간소하게 하고 증거능력의 제한을 완화한 재판 방식을 말한다.
이와 함께 자문위는 “피고인이 공소제기(기소) 직후 신속하게 검사 보관 증거서류를 열람·복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간 복잡한 사건에서는 피고인 측에서 아직 증거를 전부 열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판이 공전하는 일이 잦았다.
다음 자문위 회의는 내년 1월 22일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