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장애인 등록, 동장은 거부 권한 없어 무효”
대구지법, 장애등록 대상여부는 판단 안해
법원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의 장애 등록을 거부한 행정청(동장)의 처분에 대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은 HIV 감염인도 장애 등록을 인정해야 한다는 국내 첫 행정소송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재판부는 HIV 감염인이 장애인 등록 대상인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대구지방법원 행정1단독 배관진 부장판사는 13일 HIV 감염자인 여 모씨가 대구 남구청장과 남구 대명6동장을 상대로 낸 ‘장애인 등록신청 반려처분취소 소송’에서 남구청장에 대한 소는 각하하고, 대명6동장에 대한 소만 “반려 처분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여씨는 지난해 9월 대명6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장애 등록 신청을 했다. 하지만 장애진단심사용 진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등록을 거부당하자, 지난 1월 소송을 냈다. 장애인등록법상 장애인 등록 신청을 반려할 권한은 구청장에 있다.
배 판사는 “대명6동장이 한 장애인 등록 신청 반려 처분은 권한 없는 자에 의해 행하여진 것으로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무효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다만, 대구 남구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은 “피고적격(행정소송에서 피고로서 소송을 해 본안판결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며 각하했다.
여씨의 법률 대리인 조인영 변호사는 “이번 재판에서 HIV감염인도 장애 등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체적 판단을 다투지 않고, 반려 처분 주체가 누구인지만 다뤄졌다”며 “행정복지센터에서 안내받은 절차에 따라 장애 신청을 한 것인데, 행정청의 무심함과 무책임으로 당사자는 재판이 진행되는 지난 7개월 동안 시간만 흘려보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복지법상 장애 범주를 포괄적으로 해석해 HIV 감염인을 장애인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여씨는 “시간을 많이 들여 이번 소송을 해왔는데, 이런 결과를 받게 돼 아쉽다”면서도 “장애인으로 인정받으면 좀 더 편견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해서 시작한 소송이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으로도 파도를 일으키듯이 끝까지 소송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여씨는 다시 대구 남구청에 장애 등록 신청을 하고, 이후 결과에 따라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HIV감염인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규정된 장애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증도 등을 개별 심의해 판단할 수 있도록 한 예외적 장애 인정 심사 제도가 있지만, 이 제도의 시행규칙에도 HIV 감염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