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예산안 쟁점 분석 ⑥ 예비비 힘겨루기

1조2천억원 삭감 놓고 ‘정부 편성권’·‘국회 심사권’ 대격돌

2024-11-15 13:00:03 게재

야당, 기재위 예결소위서 심사권 활용해 ‘반토막’ 통과

기재부 “단 한 푼도 못 깎아”, “증액 동의 않겠다” 버텨

지난해 28%밖에 못 썼지만 내년엔 되려 14% 늘려 편성

국회 예산결산특위 “집행실적 고려, 예비비 감액 필요”

민주당이 1조2000억원의 정부 예비비 삭감 요구를 정부가 거부하자 2조4000억원을 깎아버렸다. 정부는 이를 두고 이미 합의한 증액안도 동의해주지 않겠다고 나섰다. 예산편성권을 가진 정부의 증액 동의권과 예산심의권을 행사하는 국회의 감액권이 충돌한 셈이다.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 13일 예결소위에서는 증액사업에 대해서는 여야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모두 합의한 상황이었고 이후 진행된 삭감 논의에서는 민주당이 예비비 1조2000억원 삭감을 요구했는데 기재부는 단 한 푼도 깎을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면서 “기재부는 이미 여야와 정부까지 합의한 증액안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 소위원회에서는 결국 정부가 편성한 예비비 4조8000억원을 절반수준인 2조4000억원으로 감액해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기획재정위 예결소위 위원장은 민주당 소속 정태호 의원이다.

◆2023년 결산심사서 ‘부적절 사용’ 수두룩 확인 = 민주당이 예비비 삭감 이유로 제시한 것은 ‘2023년 결산심사 결과’였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2023회계연도 결산 총괄 분석’ 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2023회계연도 예비비 사용 총괄명세서에 따르면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한 경호경비시스템 강화 사업 등 경호임무 수행’을 위해 예비비에서 86억7000만원을 받았다. 이중 11억원은 요인 및 국빈 경호활동 사업을 위한 특수활동비로 배정됐다. 하지만 경호처는 이미 확보했던 특수활동비까지 합해 54억9000만원을 올해로 넘겨놨다. 예산이 부족하지 않았는데도 예비비로 받은 것이다.

대통령 정상회의를 위한 외교부, 문체부, 대통령 경호실 등의 예비비 532억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외교부의 ‘정상 및 총리외교’ 사업은 본예산으로 편성된 248억6800만원보다 더 많은 328억5900만원을 예비비에서 배정받았다”면서 “예비비 배정 이후 25억7200만원 규모의 세목조정을 단행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산이 면밀해야 하고 명세서에 정해진 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2023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어긋났음”을 지적했다.

민주당은 결산심사와 관련해 “부적절한 예비비 집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윤석열정부는 예상하지 못한 긴급한 재정소요에 대비한 예비비를 사용원칙에 맞지 않게 쌈짓돈 쓰듯이 사용했다”고 했다.

야당 항의에 답변하는 송언석 기재위원장 송언석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전날 여당 단독 개의로 예산안을 소위원회에 회부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지난해 예비비 집행률 28.5%, 내년 예비비 14.3% 증액 = 정부는 내년 예비비를 올해보다 14.3%인 6000억원을 늘려 4조8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사용처가 정해져 있는 목적예비비는 18.2%인 4000억원을 늘렸고 사용할 데를 특정하지 않은 일반예비비는 10.0%인 2000억원을 증액했다.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2025년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이전의 예비비 규모는 3조원 수준이었고 2023년 예비비 4조6000억원 중 3조3000억원이 불용된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감액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8년 이후 일반회계 예비비 예산의 추이를 보면 코로나19 이전에는 3조원대였지만 코로나기간인 2020년엔 5조6100억원, 2021년과 2022년엔 각각 9조7000억원, 5조55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2023년과 올해는 감소추세를 보였다가 내년에 다시 반등 편성됐다.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 이후 인건비와 물가의 상승 등으로 인해 재해, 재난 발생시 복구비용 등이 크게 증가해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예비비에 비해 증액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비비의 집행실적을 보면 코로나19 시기였던 2020~2022년에는 집행률이 각각 97.1%, 95.6%, 85.5%였으나 지난해는 28.5%에 그쳤다.

또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목적예비비에서 주로 지출되는 재해대책비와 재난대책비가 8270억원이나 편성돼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비비는 국회에서 총액만 심사하고, 당해연도 예비비 집행내역에 대해서는 다음연도에 사후 승인할 수밖에 없어 예산의 편성과 집행에서 정부의 재량이 일반 재정사업에 비하여 큰 점을 고려할 때, 예비비의 편성규모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감액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 국회는 2022~2024년도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예비비 예산을 각각 1조1000억원, 6000억원, 8000억원 감액 의결하기도 했다.

또 국가재정법 22조는 예산총액의 100분의 1 이내의 범위에서 예비비를 편성할 수 있다고 하고 있지만 내년 예비비는 본예산의 1%를 넘어섰다.

민주당은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예산안 심사결과보고서를 통과시키지 않더라도 예비비 삭감 의지가 강해 예결위에서 관철시킬 예정이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허 영 의원은 “국회 심사를 우회하는 꼼수 예산인 예비비 과다편성을 꼼꼼히 살펴서 쳐내겠다”고 했다.

최종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예비비 삭감규모를 놓고 정부여당과 야당의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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