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집착 ‘실패할 운명’

2024-11-15 13:00:03 게재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경제선진국 추세 … FT “일자리 소멸, 중국 아닌 소비자·자동화 탓”

1810년 미국 노동력의 81%는 농업에, 3%는 제조업에, 16%는 서비스업에 종사했다. 1950년 농업 비중은 12%로 떨어지고 제조업 비중이 24%로 정점을 찍었다. 당시 서비스업 비중은 64%에 달했다. 2020년 기준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3개 부문 고용 비중은 각각 2%, 8%, 90%에 도달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논설위원 마틴 울프는 14일(현지시각) ‘제조업 물신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Manufacturing fetishism is destined to fail)’ 제하의 칼럼에서 “이러한 고용 비중의 변화는 현대 경제성장의 고용 패턴을 드러낸다. 이는 국가 규모가 크든 작든, 무역흑자를 내든 적자를 내든 국가가 부유해지면 대체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는 경제성장의 철칙”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같은 진화의 원동력일까. 울프는 하버드 케네디스쿨 로버트 로렌스 교수가 2022년 발간한 저서 ‘비하인드 더 커브 - 제조업은 여전히 포용적 성장을 제공할 수 있는가(Behind the Curve - Can Manufacturing Still Provide Inclusive Growth?)’를 인용했다.

로렌스 교수는 책에서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3개 부문의 초기 고용 비중, 제품에 대한 수요의 소득탄력성, 대체탄력성, 생산성의 상대적 증가율 등의 수치로 이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다. 소득탄력성은 소득에 따른 상품 또는 서비스 수요의 비례적인 증가를 측정한다. 대체탄력성은 가격 변화가 수요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한다.

고용비중 변화, 경제성장 철칙

이 모델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결과는 ‘파급효과’다. 즉, 한 부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다른 부문에서 일어나는 일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첫째, 생산성은 농업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한다. 제조업이 그 다음이고 서비스업이 가장 느리다. 둘째, 수요의 소득탄력성은 농업의 경우 1(1 이하는 비탄력적, 1 이상은 탄력적)보다 낮지만 제조업은 1보다 높고 서비스업은 그보다 더 높다. 셋째, 대체탄력성은 모두 1 미만이다. 이는 특정범주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면 그 범주에 지출되는 소득의 비율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적용하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 고소득 국가들에서 비슷한 패턴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2가지 긍정적인 힘, 즉 저렴한 식량과 높은 소득이 소비를 제조업으로 이동시키고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인다. 하지만 2가지 부정적인 힘, 즉 서비스 대비 제조품의 가격 하락, 서비스에 대한 수요의 높은 소득탄력성이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농업혁명이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조업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농업의 비중이 너무 작아져 제조업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지 못하는 시기가 오게 된다. 그러면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에서 활동하는 세력이 우세해진다. 제조업의 고용 점유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미국에서는 70년 동안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울프는 “이 과정을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물이 내리막길로 흐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조업 작업은 반복적이다. 그리고 통제된 환경에서 정밀하게 수행돼야 한다. 이는 로봇에게 완벽한 환경이다. 그렇다면 수십년 후에는 아무도 생산라인에서 일하지 않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어떤 면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울프는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누군가의 탓을 하려고 한다.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국내 소비자와 자동화 탓으로 돌리기보다 중국 탓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더 쉽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의 대중국 상품 무역적자는 GDP의 1%에 불과하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총 상품수지 적자는 GDP의 4% 정도였다. 만약 이것이 제거된다면 실제로 미국내 상품 생산이 증가할 수 있다. 울프는 “하지만 서비스업을 희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효과라 해도 제조업 고용 비중을 10년 전 또는 20년 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로렌스 교수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낸 또 다른 논문 ‘미국은 중산층을 부양할 제조업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가’를 보면 바이든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막대한 보조금조차 전체 고용에서 제조업 비중이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도 이 추세를 막을 수 없을 전망이다. 제조업에서 무역흑자를 내는 아시아 주요국들도 해당 부문의 일자리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

울프는 “일부 제조업은 실제로 국가안보에 필수적이다. 또 일부 제조업의 생산능력은 경제에 중요한 외부효과를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소프트웨어 등 다른 분야보다 제조업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조업을 물신화한다고 해서 제조업 일자리를 회복할 수는 없다. 더 나쁜 것은 트럼프 관세가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관세와 불법이민자 추방, 감세계획은 서로 충돌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관세, 물가만 올리고 제조업 못살려

미국 공공정책 싱크탱크 ‘프로그레시브 폴리시 인스티튜트(PPI)’도 최근 ‘트럼프 1기정부 관세가 물가만 올리고 제조업 일자리를 되살리지 못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트럼프정부의 2가지 주요 관세는 2018년 3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섹션 232조, 2018년 9월~2019년 중반까지 3차례에 걸쳐 대부분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섹션 301조다. 이로 인해 2019년 기준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1.4%에서 3.0%로 인상됐다.

PPI가 인용한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철강·알루미늄 관세 인상으로 이들 수입품의 상대적 가격이 상승하면서 미국내 철강·알루미늄 생산량이 증가했다. 하지만 철강·알루미늄의 가격 상승은 전방산업의 생산 투입 비용 상승으로 이어졌다. 또 관세로 중국 수출업체들이 받는 가격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PPI는 “관세에 대한 수입가격의 탄력성이 1에 가까워 관세인상에 따라 수입가격이 약 1 대 1로 상승했다. 즉, 관세 비용이 수출업체에서 수입업체로 완전히 전가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ITC 보고서에 따르면 또 철강·알루미늄 관세로 2021년 기준 두 금속의 미국내 생산량이 약 22억달러 증가했지만 자동차 부품과 기계, 공구 및 기타 금속 사용 제조업체의 생산량은 약 35억달러 감소했다. 전체적으로 미국 제조업이 오히려 위축된 셈이다.

미국 GDP 통계를 산출하는 상무부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트럼프 관세 직전인 2017년 미국 경제규모 19조6000억달러 가운데 비행기와 자동차, 반도체칩, 냉동육, 정유제품, 의약품, 플라스틱 등 제조업 비중은 10.9%(2조1000억달러)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10.3%(22조3800억달러 가운데 2조2900억달러)로 줄었다.

고용상황도 비슷하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17년 7월 제조업은 전체 취업자 1억4680만명 중 1250만명(8.5%)을 고용했다. 올해 7월 기준 이 수치는 8.2%(1억5870만개 일자리 중 1300만개)로 줄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중반부터 2017년 중반까지 제조업 일자리는 79만5000개 순증했다. 연 평균 9만9500개다. 반면 2017년 중반 이후 최근까지는 48만개 순증으로 연 평균 6만8600개에 그쳤다.

임금측면에서도 상황이 반전됐다. 제조업 노동자들은 2017년 전국 모든 노동자 평균보다 시간당 약 27센트를 더 받았지만, 2021년엔 시간당 29센트를 덜 받았다.

한편 영국 경제정책 연구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2021년 “트럼프발 무역전쟁과 관세로 미국민 일자리 24만5000개와 GDP 0.5%가 사라졌고, 가구당 실질소득이 675달러 감소했다”고 추산한 바 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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