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과학과 문학적인 기술
러브레이스, 잡스 등 선구자들, 문학적 상상력을 과학으로 구현
기술의 장막 뒤에 문학이 있다. 소설가 한 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껏 고무된 대한민국에서 이제 문학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어느 작가의 작품이 단숨에 150만부나 팔렸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던 문학적 갈증을 방증한다. 이때다 싶어 오래 생각해온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문학과 과학의 교차점에 서려고 한 사람들, 시와 소설이 기술에 미친 영향은 필자가 실리콘밸리 근무를 시작하던 때부터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 수년간 붙들고 있는 주제다. 역사적 인물이 남긴 흔적을 살피기 위해 시계를 2세기 전으로 돌린다. 시작점은 시인 바이런(Byron)의 딸이자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칭호가 붙은 영국 여성 ‘에이다 러브레이스’다.
현대식 컴퓨터 개념 만든 시인 바이런의 딸 러브레이스
“당신은 내게 철학적 시를 허락해주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순서를 바꾸면 어때요? 시적인 철학, 시적인 과학은 허용해줄 건가요?” 1815년 12월 10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10대 시절 어머니께 보낸 편지다.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당대를 대표하는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과 부유한 귀족 집안의 ‘애너벨라 밀뱅크’ 사이에서 태어났다. 밀뱅크는 결혼 전 수학교육을 받았고 이런 사실에 시인 바이런이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둘은 1815년 1월 결혼한다. 하지만 바람기가 다분했던 바이런은 결혼 후에도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리고 다닌다. 결국 밀뱅크는 결혼 1년 만에 생후 5주였던 갓난아기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탈출한다. 이후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아버지 바이런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러브레이스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기질을 제어하려는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 아래 성장했다. 어머니의 전략 중 하나는 시적 상상력의 해독제로 수학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스코틀랜드 천문학자인 메리 서머빌에게 수학 교습을 맡겼고 다섯 살에 이미 “대여섯 자리 큰 수의 덧셈을 정확히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10대 때 비행기구를 설계할 계획을 세울 만큼 공학적 재능이 뛰어났던 러브레이스는 사춘기를 거치며 아버지의 유산까지 갖춘 자신을 발견했다.
수학적으로 영민하지만 문학적 감수성까지 보유한 러브레이스는 어머니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시적인 과학(poetical science)’을 상상했다. 러브레이스는 열아홉 살이 되면서 ‘시적 과학’을 실현할 중요한 인물과 조우한다. 한 사교 모임에서 기계식 컴퓨터를 구상하고 있던 ‘찰스 배비지’를 만난 것이다.
러브레이스와 배비지는 힘을 모아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인정받게 되는 기계,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공동연구를 하던 중 러브레이스는 배비지와 인연이 있던 이탈리아의 공학자가 쓴 ‘해석기관의 초안’이라는 논문을 번역하는 일을 맡았다.
이 논문을 번역하면서 러브레이스는 원문보다 2.5배나 많은 65쪽에 달하는 주석을 달았다. 이 주석에는 본질적으로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 볼 수 있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843년 당시 27세였던 러브레이스는 컴퓨터가 발명되기 100년도 전에 디지털 시대 탄생의 기초가 되는 네 가지 중요한 개념에 대해 서술했다.
우선 러브레이스는 미리 프로그래밍된 반복을 뛰어넘어 무제한으로 작업을 실행할 수 있는 범용기계를 상상했다. 이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와 다름없다. 또한 이 범용기계가 단순한 수학적 계산에 그치지 않고 글, 그림, 음악, 상징, 예술적 표기 등을 다룰 수 있는 기초도구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다음으로 단계별로 작동하는 방식의 개요, 즉 우리가 오늘날 알고리즘이라 부르는 개념을 제시했다. 끝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여전히 가장 논쟁적 화두인 “기계가 과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세기가 흐르며 러브레이스는 모순되고 공존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두 영역을 포기하지 않은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러브레이스는 해석기관을 서술할 때도 “방직기가 꽃과 잎의 무늬를 짜나가듯이 대수의 무늬를 짜나간다”는 문학적 표현을 쓰며 기성 과학계가 내친 기계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헤세 르네상스’의 세례 받았던 잡스
러브레이스가 뿌린 씨앗은 100년이 지나 미국에서 꽃을 피운다. 1977년 미 국방부가 개발한 고급 객체 지향 프로그램밍 언어에는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에이다’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서부에서는 일련의 젊은이들이 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인간의 자유와 진보를 모색한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베이, 즉 실리콘밸리에는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흐름이 존재했다. 방위산업의 성장과 함께 최첨단 기술혁명이 태동했다. 컴퓨터광을 중심으로 한 하위문화도 만개했다. 비트 세대를 주축으로 일어난 히피 운동과 버클리대학의 자유언론 운동(Free Speech Movement)을 발판 삼은 저항적 움직임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인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당시 미국 서부 젊은이들의 우상은 헤르만 헤세였다. 헤세가 1962년 사망하고 미국은 헤세 열풍에 빠진다. 독일 출판사 주어캄프(Suhrkamp)에 따르면 1973년까지 미국에서 헤세 작품은 모두 800만부 팔렸다. 당시 버클리대학 근처에는 ‘데미안’이란 술집, ‘싯다르타’라는 이름의 옷가게, ‘파블로’라는 나이트클럽이 우후죽순 생겨날 정도였다. 모두가 헤세 소설의 등장인물로 미국에서는 당시의 반문화 현상을 ‘헤세 르네상스’로 부르고 있다.
헤르만 헤세에 열광한 젊은이들 중 일부는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자연으로 회귀했다. 헤세의 소설처럼 세금을 내고 법을 따르고 가부장적 질서에 편입되는 삶 너머에 자유롭고 해방된 세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일부는 컴퓨터 문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스탠퍼드대학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이자 ‘반문화에서 사이버 문화로’의 저자인 프레드 터너는 “1970년대에는 반문화주의자들과 컴퓨터광들이 기술을 개인 해방의 도구로 인식해 연대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그들은 가상 공간에서 대안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함께 공고한 사회의 벽을 뚫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헤세 르네상스와 폭발적 기술 성장의 교차점에 선 상징적 인물이 스티브 잡스다. 반문화 세계의 시민이자 컴퓨터광이던 그는 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1976년 4월 애플을 창업한다. 35년이 흐르고 2011년 3월, 잡스는 아이패드2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문학과 결혼한 기술(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이라는 개념으로 발표를 마무리한다. 애플이 세계 최대 기술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문학적 소양이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애플은 자신들의 반문화 정체성을 드러내는 과정에서도 문학적 방식을 십분 활용했다. 애플하면 떠오르는 슬로건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엄밀히 말해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다. 동사 ‘think’를 수식하기 위해 부사인 ‘differently’가 와야 하지만 잡스는 형용사 ‘different’를 명사처럼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르게 생각하라’는 의도를 온전히 담기 위해 이 문장의 문법마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시적 허용(poetic license)’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미친자들이 세상을 바꾼다
소설가 한 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보며 새삼 번역의 중요성을 자각했다. 변변찮게 영어로 된 시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하지만 애플의 ‘다르게 생각하라’ 문안은 수백번 암송해서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한 편의 시와도 같은 이 작품의 의미를 누구보다 많이 생각해본 이로서 미숙하지만 필자의 번역을 공개하며 마친다.
“이것은 미친 자들을 위한 편지.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사고뭉치들. 네모난 구멍에 박힌 둥근 말뚝 같은 이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싫어합니다. 현상유지(status quo)에 대해서는 어떠한 자비도 없죠. 당신은 그들을 인용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어요. 치켜세우거나 깎아내릴 수도 있고요. 단 한가지 할 수 없는 일은 그들을 외면하는 겁니다. 왜냐면 그들이 세상을 바꾸니까요. 그들이 인류를 나아가게 하니까요. 누구는 그들을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천재를 봅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자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