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배출권으로 기후위기대응 ‘이중고’…기업투자·기금확보 모두 차질
시장경제원리로 탄소감축 무색
실질유상할당비율 3.8%에 불과
온실가스 배출권이 처음부터 무료로 제공되고 시장에서 적정 가격에 매매가 이뤄지지 않아 기후대응기금 확보는 물론 탄소감축사업에도 연쇄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시장경제 원리를 기반으로 기업 등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벌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하지만 초기 제도 정착 등을 이유로 지나치게 많은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하면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본디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면서 탄소감축이라는 제도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4일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해외 무역 규제와 향후 예상할 수 있는 소비자의 구매 거부 운동 등을 고려할 때 저탄소 생산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 데,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와 함께 기업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배출권 유상할당 비중을 높여 이를 모두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과 도입 등에 지원을 하면 전반적으로 추가 부담 없이 온실가스 감축을 하고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제적으로 확실한 유인책을 제공해 신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도록 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며 “규모의 경제와 학습효과 등으로 태양광 발전 단가가 급격히 하락한 것과 같이 한편으로는 새로운 성장 동력 산업을 육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들의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낮은 비용의 감축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기후대응기금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실적을 기반으로 한 자료가 있는 2023년 배출권 실질 유상할당 비율은 3.8%에 불과하다. 제3차 배출권거래제 기간(2021~2025년)의 유상할당 비율은 10.0%다. 하지만 배출량 전체를 무상으로 할당받는 업체들도 있으므로 실질 유상할당 비율은 10.0%보다 낮은 3.8% 수준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부문별 실질 유상할당 비율은 △공공·기타 부문 10.0% △전환 부문 8.7% △건물부문 7.1%다. 반면 △산업 부문은 0.5% △폐기물 부문은 0.1%다.
기후대응기금의 주요 재원 중 하나는 온실가스 배출권 유상할당 매각에 따른 수입이다. 이 수입은 국가배출권 할당계획에 따라 경매 등의 방법으로 배출권을 유상으로 할당하면서 발생한다. 혹은 시장안정화조치를 위한 배출권 예비분 공급을 상환하면서 생긴다. 이렇게 발생한 수입은 거래수수료를 제외하고 전액 기후대응기금수입으로 편입된다.
문제는 배출권 유상할당 수입이 처음 예상과 달리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기후대응기금평가 보고서에서는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 하락으로 수입이 매년 감소하고 실제 수납액은 계획보다 더 줄어드는 등 기후대응기금 자체수입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도별 온실가스 배출권 유상할당 수입금 예결산 현황에 따르면, 2020년에는 초기 계획 2701억원 보다 많은 수입 2976억원이 발생했다. 하지만 2021년부터 계획액 대비 실제 수입액은 더 적었다. 유상할당 비중이 증가하는 2021년에는 수입 5509억원이 발생할 걸로 예상됐다. 하지만 수입액은 계획액 대비 60.1%인 3068억원에 불과했다.
또한 기후대응기금 설치 첫해인 2022년에 수입 7306억원을 예상했지만 2021년과 비슷한 수준인 3188억원만 발생했다. 계획액 대비 수입 약 4000억원이 감소했다. 2023년 역시 계획액의 21.3%에 해당하는 수입 852억원이 발생했다. 2023년 계획액 대비 수입 약 3000억원이 덜 생겼다.
기후대응기금평가 보고서에서는 “낮은 배출권 가격은 기후대응기금의 자체수입 감소와 함께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투자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며 “정부는 배출권 가격수준이 적정한지 평가해 배출권거래시장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 역시 “배출권 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돼야만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며 “또한 장기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의 투자의사결정 시 여러 기술 선택에 있어서 투자에 대한 수익 또는 최소의 비용으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배출권가격이 일정 수준을 유지해야만 온실가스 감축 투자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적극적으로 신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18일 기후솔루션 등 6개 환경단체들은 “실질적인 감축 규제 수단인 배출권거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탄소누출업종(다배출업종)에 대한 유상할당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3차 계획기간은 2025년에 끝난다. 4차 계획기간은 2026년 1월부터 시작한다. 이에 정부는 2024년 12월까지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제4차 배출권거래제기본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또한 2025년 6월 말까지 제4차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17일 환경부 관계자는 “유상할당 확대 등을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라며 “부처들과 협의 중이며 27일 관련 공청회가 열린다”고 설명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 온실가스 배출자가 배출량에 비례해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발행하고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서 정부에 제출한다. 기업(할당업체)마다 감축 목표량이 있고 목표량만큼 감축하지 못하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과징금을 문다. 반대로 목표량을 초과하면 그만큼 배출권을 내다 팔 수 있다.
■기후대응기금 =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2022년 신설됐다. 운용규모는 2조6224억원(2025년 계획안 기준)이다. 온실가스감축인지 기금운용계획서에서 제시하는 기후대응기금 사업의 2025년 온실가스 예상감축량은 173만톤CO₂e(여러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CO₂)로 환산한 수치)이다. 이는 약 29만가구가 1년 동안 전기 사용에 따른 CO₂ 배출량(가구당 연간 CO₂ 약 6톤을 뿜어낸다고 가정)에 해당하는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