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알파폴드와 독성 예측의 새로운 지평

2024-11-19 13:00:01 게재

2024년 노벨화학상은 인공지능(AI) 기술이 단백질 구조 예측에서 이루어낸 혁신적 성과를 인정하며 과학과 기술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번 노벨화학상은 알파폴드 (AlphaFold)로 대표되는 AI 기술에 수여되었다. 알파폴드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다. 이 기술은 수십년 동안 풀리지 않던 단백질 구조 문제를 단 몇분 만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알파폴드는 2018년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인 CASP13에서 첫 선을 보이며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대회는 단백질 구조를 수학적으로 예측한 후 이를 실험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알파폴드는 기존의 예측 방법과는 차원이 다른, 아미노산 간 거리 예측 기법을 도입해 대부분의 목표에서 실험결과와 거의 일치하는 정확도를 기록했다. 이로써 생명현상의 비밀을 퍼즐처럼 풀어내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도 알파폴드의 대항마 ESM폴드(ESMFold)를 출시해 단백질 구조 예측 경쟁에 들어갔다.

알파폴드의 등장은 단백질 구조 예측의 혁신을 넘어 생명과학 연구와 신약 개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단백질 구조를 정밀하게 예측함으로써 신약 후보물질을 설계하거나 질병의 발병 원리를 탐구하는 속도가 크게 빨라졌다. 신약 개발의 복잡한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도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강력한 도구가 된 것이다.

알파폴드와 같은 AI 기술의 활용범위는 단순히 신약 개발에 그치지 않고, 화학물질 독성 예측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화학물질이 단백질과 상호작용하며 독성 효과를 발현하는 초기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알파폴드로 예측된 정밀한 단백질 구조 데이터는 독성 예측 모델의 성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AI의 화학물질 독성예측 분야로의 확장

2014년에 개최되었던 톡스(Tox)21 데이터 챌린지는 AI 기반 독성 예측의 가능성을 보여준 초기 사례로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식품의약국(FDA)이 주도해 화학물질의 생물학적 활성을 AI로 예측하는 도전 과제를 제시했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AI 기반 화학물질의 독성 예측 모델은 독성과 관련된 생물학적 활성 예측 능력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왔고 최근에는 과학적 신뢰를 얻을 만큼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올해 진행된 Tox24 챌린지는 이러한 AI 독성 예측 기술을 한층 심화해 시험하는 자리였다. 이번 대회의 과제는 트랜스티레틴(TTR)이라는 단백질과 특정 화학물질 간 결합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내분비계 교란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예측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과거 실험실에서만 가능했던 복잡한 상호작용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 일상에서 사용하는 화장품 세제 생활용품에는 수많은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중 독성이 검증된 물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기존의 실험실 기반 독성 평가 방법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모든 화학물질을 평가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AI 기반 독성 예측 모델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치 기상청 슈퍼컴퓨터의 기상예보가 날씨를 예측하듯 AI는 화학물질의 잠재적 독성을 데이터 기반으로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인 실리코(in silico, 가상공간) 시험법은 기존의 실험실 시험보다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알파폴드의 정밀한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은 AI 독성 예측 모델의 정확도를 한층 높이며 화학물질과 단백질 간의 생물학적 상호작용을 정교하게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AI와 지속가능한 미래

AI 기반 독성 예측 기술은 앞으로 규제기관과 산업계에서 핵심도구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화학물질 관리와 지속 가능한 환경 관리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인류와 환경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2024년 노벨화학상이 알파폴드를 비롯한 AI 기술에 수여된 것은 AI가 과학 기술의 난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잠재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AI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우리는 더 안전한 사회,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며, AI가 열어갈 가능성을 기대한다.

최진희 서울시립대 교수 환경독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