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트럼프 관세폭탄 최대 피해국 될라
수입은 중국에서 제일 많고
수출은 미국에 가장 많이 해
베트남 진출 한국기업도 우려
베트남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대중국 무역전쟁의 최대 수혜국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무차별 관세전쟁을 일으킬 경우 가장 큰 피해국이 될 수 있다고 기업들과 분석가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18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베트남은 최근 수년 동안 대미 수출 흑자액 기준 전세계 4위 국가로 올라섰다. 중국 멕시코 유럽연합(EU)의 뒤를 잇는다. 전세계 제조업체들이 트럼프 관세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 있던 생산시설을 베트남으로 대거 옮기면서다. 이른바 ‘중국+1 전략’이다. 하지만 그같은 성공이 이제 베트남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베트남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30%에 육박했다.
호치민시 소재 컨설팅기업 ‘데잔 쉬라 앤 어소시에이츠’의 마르코 푀르스터는 “베트남은 미국의 엄격한 검증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대중국 관세를 피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우회하는 상품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중국상품에 60% 관세를, 기타 모든 나라들의 상품에 최대 20%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싱가포르은행 OCBC 경제학자들은 지난해 5%였던 베트남 경제성장률이 트럼프발 관세폭탄을 맞게 될 경우 최대 4%p 사라질 것으로 경고한다. 푀르스터는 “관세폭탄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대선 유세기간 트럼프 후보는 베트남을 특정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2019년 대통령 재임시 폭스뉴스에 출연해 “베트남은 거의 모든 나라를 학대하는 최악의 나라다. 중국보다 더 심하게 미국의 등을 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도 동요하고 있다. 주 베트남 한국상공회의소 홍 선 소장은 FT에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예고한 관세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오랫동안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에 공을 들였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의 최대 투자기업이다. 홍 소장은 “트럼프 관세폭탄이 현실화하면 한국기업들은 투자와 현지생산을 줄이거나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남아시아 모든 나라들이 미중 무역전쟁의 수혜국이었지만 베트남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베트남은 중국과의 근접성, 기업친화적인 정부정책, 굵직한 인센티브 등으로 외국기업들을 끌어모았다. 지난해 베트남으로 유입된 FDI는 366억달러였다. 대미 무역흑자는 1040억달러를 넘었다. 2017년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2위 국가인 태국의 대미 흑자액은 410억달러로, 베트남의 절반에 못 미쳤다.
트럼프정부와 달리 바이든정부 들어서면서 미국-베트남 관계가 강화됐다. 양국은 지난해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트남을 ‘전세계 중요한 국가이자 동남아의 기준국가’라고 불렀고, 트럼프정부가 지정한 ‘환율조작국’ 멍에를 풀어줬다. 또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굴기를 막기 위해 베트남의 반도체 생산량 증산을 지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트럼프정부를 달래기 위해 중국 투자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고, 반덤핑 조사를 벌일 수 있다고 본다. 또 미국산 군사장비와 민항기,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하면서 무역흑자폭을 줄이는 조치도 예상된다. 정치리스크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 동아시아 대표 피터 멈포드는 “문제는 베트남 경제가 상대적으로 왜소해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베트남은 ‘대나무 외교’로 불리는 비동맹 외교정책으로 미국과 중국 어느 나라에도 치우치지 않는 자세를 고수해왔다. 미국산 수입을 크게 늘리면 반대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 최근 중국의 베트남 투자가 급등했다. 중국본토의 경우 2022년 25억2000만달러에서 지난해 44억7000만달러로, 홍콩의 경우 22억2000만달러에서 46억8000만달러로 늘었다. 올해 베트남에 신규 착수하는 외국인투자 프로젝트 수는 중국이 1위를 달리고 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