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장 후보 추천제’ 사실상 폐지
법원행정처, 투표 없이 전국서 추천받고 대법원장이 임명
고법부장판사도 지방법원장 보임 허용 … “과도기적 조치”
법관대표, 12월 9일 정기회의 정식 안건 상정 … 의견 수렴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임기때 사법개혁의 하나로 도입됐던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추천’이라는 형식만 남기고 사실상 폐지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내년도 법원장 보임에 소속 법원 법관을 비롯해 전국 단위 사법부 구성원의 추천을 받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 고등법원 부장판사(현재 66명)도 지방법원 법원장에 보임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18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올린 글을 통해 “2019년부터 5년 동안 소속 법관의 천거 및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시행되었지만, 법원장 보임에 법관의 의사를 반영하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대내외적으로 여러 문제와 부작용이 지적되는 등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며 “사법정책자문위원회의 논의 및 전국 법관 대상 설문조사 등을 통해 수렴한 법원 안팎의 다양한 의견 등을 토대로 새로운 법원장 보임 절차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도입되는 법원장 보임 절차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전국 법원의 판사와 일반직 공무원 등 사법부 구성원들로부터 법원장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추천받는다. 이후 법관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각급 법원에 적임자를 임명한다. 추천이라는 형식은 살렸지만 투표 없이 대법원장이 거의 전적으로 임명한다는 점에서 일선 판사들이 법원장 후보를 선출하는 기존 제도는 사실상 폐지되는 셈이다.
기존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각 법원마다 소속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를 복수로 선출하면 대법원장이 한 명을 법원장으로 임명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법관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다 보니 ‘인기투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법원장이 된 사람은 자신을 뽑아준 후배들 눈치를 보느라 사건을 빠르게 처리하라고 지시도 제대로 못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또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지방법원장이 될 수 있는 길도 한시적으로 허용된다.
기존에는 소속 법원에서만 추천·보임이 가능했기 때문에 재판 업무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은 고법 부장판사들이 지방법원장에 보임되는 게 불가능했다. 고등법원은 전국에 6곳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전국적으로 후보들을 추천받고 조희대 대법원장이 각 법원에 적임자를 임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고법 부장판사에게도 기회가 생긴다.
천 처장은 “2025년 법관 정기인사에 지방법원장은 원칙적으로 지방법원 소속 법관 중에서 보임하되, 법원의 특성과 후보군 등을 면밀히 살펴 한시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일부 지방법원장은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보임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둘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점차 그 보임 규모를 축소해 최종적으로는 대법원장 임기 중에 이러한 과도기적 운영을 마무리해 이후부터는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모두에서 새로운 법원장 보임 제도가 원만하게 도입, 정착될 수 있는 안정적 여건을 최대한 빨리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각 법원 판사가 투표를 통해 천거한 후보 2~4명 중 1명을 대법원장이 법원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대법원장 권한 분산과 사법행정의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2018년부터 김 전 대법원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했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선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소속 법관의 ‘인기 투표’ 가능성, 재판 지연 해소와 같은 적극 행정이 어려워졌다는 지적에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지난 9월 회의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충분한 적임자 추천의 한계, 추천 절차 진행 과정에서의 논란, 실시법원의 절차적 부담 등에 대한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고 건의했다.
법원행정처가 지난달 전국 법관 1378명을 대상으로 인사제도 개선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84%(1150명)는 법원장 추천제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개선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은 16%를 기록했다.
이번 조치는 전국의 모든 지법원장과 행정법원장, 가정법원장, 회생법원장 보임에 동일하게 적용할 계획이다.
향후엔 고등법원장 보임에 대해선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선 방안에 대해 법원 내부에선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전국 법원에서 선출된 판사들이 모인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달 법원 내부망에 법원장 후보 추천제 폐지 논의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올렸다.
법관대표회의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사법행정 구현 및 이원화 제도 정착에 기여해 온 법원장 추천제를 철회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인사제도 개선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우려가 나타났다.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개선안으로 제안한 고법 부장판사와 고법판사도 지방법원장 후보로 천거될 수 있도록 하는 의견에 복수 응답으로 21%(283명)와 32%(446명)만 찬성하는데 그쳤다.
대신 56%(768명)는 지금처럼 인사 이원화 취지를 고려해 지법 소속 법관만 후보로 천거되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법관대표회의는 오는 12월 9일 열리는 정기회의에 법원장 보임과 법관 인사 이원화 제도 관련 안건을 정식 상정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법관대표회의는 법원행정처에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질의사항을 전달하고 오는 22일까지 답변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