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배<큐텐그룹 대표> 영장 또 기각, 체면 구긴 검찰
법원 “범죄성립 다툼 소지, 증거인멸 우려 보이지 않아”
‘티메프’ 전담수사팀, 신병확보 실패 … 수사 차질 우려
티몬·위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와 계열사 경영진에 대한 구속영장이 또다시 기각됐다. 검찰은 전담수사팀까지 구성해 수사에 나섰지만 핵심 피의자 신병확보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체면을 구기게 됐다. 향후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를 받는 구 대표와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이날 새벽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남 부장판사는 구 대표에 대해 “종전 구속영장 기각 후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려 시도했거나 도주하려한 사실은 보이지 않는다”며 “범죄 성립 여부와 그 경위에 대해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남 부장판사는 또 “영장 기각 후 추가로 수집·제출된 증거를 포함해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 피의자의 주장 내용, 수사 진행 경과, 피의자의 경력과 사회적 유대관계를 종합해보면 종전 기각 결정과 달리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류광진·류화현 대표에 대해서도 종전 구속영장 기각 후 증거를 인멸하려 시도했거나 도주한 사실이 보이지 않고 범죄 사실과 공모·가담 여부에 대한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남 부장판사는 특히 류광진·류화현 대표의 지위와 역할, 구 대표와의 관계, 구속영장 기각 후 추가로 제출된 증거 등을 종합해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류화현 대표의 경우 위메프에 합류하게 된 경위도 영장 기각 사유로 언급됐다. 그는 2004년부터 G마켓에서 구 대표와 함께 근무한 사이로 2022년 9월경 구 대표가 티몬을 인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일했던 위메프를 인수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대표는 류광진·류화현 대표와 공모해 1조5950억원 상당의 물품판매 등 관련 정산대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로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에 총 720억원의 손해를 끼치고 미국 전자상거래 회사 인수대금 등으로 3개사 자금 총 799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있다.
앞서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불거져 피해자가 속출하자 검찰은 지난 7월말 당시 이원석 검찰총장 지시로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수사를 본격화했다. 7명의 특수수사 검사가 투입된 수사팀은 구 대표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를 진행해 지난달 초 구 대표와 류광진·류화현 대표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혐의의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모두 기각했고, 검찰은 보완수사를 진행해 지난 14일 영장을 재청구했다.
검찰은 구 대표가 처음부터 보유 현금을 유용할 목적으로 별다른 자본 없이 티몬·위메프 등을 인수해 돌려막기식으로 운영하면서 큐텐의 손실을 메우는 도구로만 사용했다고 본다. 특히 구 대표 등은 티몬·위메프가 정산대금 지급불능 사태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역마진 상품권과 가전 판매 등을 통해 무리하게 매출을 부풀리는 등 사기행위를 벌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반면 구 대표 등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매출을 늘리는 것은 이커머스 플랫폼 사업의 일반적인 특성이며 사기의 고의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구 대표는 특히 나스닥 상장 성공시 투자 유치를 통해 경영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류광진·류화현 대표측은 회사는 구 대표 지시에 따라 운영돼왔으며 공모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검찰이 한 차례 영장 기각 후 피해자들을 전수조사하는 등 보강수사를 거쳐 영장을 재청구했음에도 또다시 법원에서 기각됨에 따라 수사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법원이 범죄 혐의 소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만큼 향후 검찰 수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해 수사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피해자 단체인 ‘검은우산비상대책위원회’는 구 대표 등의 영장 기각 후 입장문을 내고 유감을 표명했다.
비대위는 “우리나라 법률제도가 상식적 범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이상한 법리적 논리로 강자 기업인을 위해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피해자 구제를 외면하는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구본홍 박광철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