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아직도 활개치는 경찰 주변 ‘애국자들’
“10여년 전에 가끔 애국자를 본 적이 있지만 지금도 있는 줄 몰랐다.” 서울지역 한 경찰 간부의 말이다. ‘애국자’란 경찰들 회식 때 나타나 비용을 대신 내주는 업자를 가르키는 경찰계 은어다. 없어진 듯했던 이 애국자가 다시 등장했다.
최근 서울 강남권 경찰서에서 의뢰인-브로커-경찰 수사팀장이 연루된 수사무마·청탁 사건이 발생해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경찰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 사건 중심에는 지방경찰청과 강남권 경찰서에만 20년 이상 근무한 수사팀장이 있다. 이 팀장을 업자에게 소개한 브로커는 전직 경찰이다. 경찰대 17기 출신인 이 브로커는 한때 서울경찰청에도 근무했다. 하지만 재직 중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서 파면으로 경찰옷을 벗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사건 의뢰인(업자)은 수시로 수사팀장을 만났고 현금과 선물을 전달했다. 업자는 수사팀의 다른 경찰과도 여러차례 저녁식사를 했다. 물론 비용은 업자가 냈다. 경찰의 날을 맞아 청계산 아래서 했던 회식 때도 나타나 식비를 계산했다. 이런 상황에 그가 연관된 관할 사건 수사에 영향이 없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수사팀장은 1심 재판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감찰을 검토하고 있다.
수사 업무 공정성을 위해 경찰청훈령은 경찰공무원이 수사 중인 사건 관련해 관계자와 부적절한 사적접촉을 금지하고 있다. 합법적인 접촉도 소속 경찰서에만 하도록 하고 있다. 경찰의 ‘사건문의 절차 일원화 제도 활성화 방안’에는 우연히 만난 사적접촉도 2일 이내에 ‘사적접촉 신고센터’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상급자나 동료 등 내부직원 간 사건문의는 청문감사관실로 일원화됐다. 경찰서 민원실이나 카페 외부에는 ‘사적접촉 통제, 사건문의 금지 안내’를 붙여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여전히 사건 문의는 많고 신고는 잘 되지 않는다. 한 경찰관은 “사건문의가 오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고소인이 피해자인 경우 절차 정도만 안내한다”고 했다. 다른 경찰도 일반적인 문의가 오면 의례적으로 립서비스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신고하기 어려운 이런 분위기 때문에 아직도 애국자들이 발붙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찰은 2022년 8월 사적접촉 통제와 사건문의 금지 등 반부패 대책 내실화 방침을 밝혔다. 이때 사건관계인 접촉 금지 외에도 법무법인 등에 재취업한 3년 내 퇴직경찰관과의 접촉 시 사전신고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경찰서장부터 인접 부서 경찰까지 사건을 물어보는 관행은 여전하다. 이제라도 뿌리 깊은 관행을 없애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과 대책이 필요하다.
박광철 기획특집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