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트럼프보다 더 무서운 자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큰 기여를 한 기업가를 꼽으라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와 페이팔과 팔란티어 테크놀러지스의 공동창업자 피터 틸일 것이다. 머스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아메리카 팩(America PAC)’이라는 정치자금 모금단체에 개인적인 후원금 규모에서 3인방에 들 정도로 2000억원 규모의 거금을 쏟아 부었다.
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사들여 그동안 막혀 있던 트럼프의 계정을 복구해주고 지지를 선언했다. X는 지난 대선 때 트럼프가 사용한 핵심 미디어였으며, 2021년 1월 대선 패배 불복을 선동한 의회 폭동 사태 후 X 계정을 영구 정지당한 상태였다. 머스크는 또한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살다시피 하며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실리콘밸리 파워그룹 ‘페이팔 마피아’의 워싱턴 주류 등극
피터 틸은 일론 머스크와 함께 ‘트럼프 2기’를 현실로 만든 테크 거물로 꼽힌다. 1998년 전자결제시스템회사인 페이팔을 설립해 미국의 온라인 상거래 시대를 열어젖힌 핀테크 혁명을 이끈 인물이다. 일론 머스크 역시 틸이 이끈 페이팔 초기 공동 창업자 중 한명이다. 페이팔 창업자들은 이후 링크드 인, 유튜브 등을 창업했고 페이스북(현재 메타 플랫폼스) 등 수십개의 스타트업에 투자자로 참여해 실리콘 밸리를 움직이는 파워그룹으로 성장하며 ‘페이팔 마피아’라는 별명을 얻었고 틸은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로 불린다.
틸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활약으로 유명해진 국방인공지능(AI) 군산복합기업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하다. 팔란티어의 AI 솔루션을 적용한 결과 우크라이나 군이 사용하는 살상용 드론의 적중률이 50%에서 80%까지 올라갔으며 이코노미스트 등 해외언론은 “다윗(우크라이나)과 골리앗(러시아)의 싸움에서 다윗의 돌팔매 역할을 한 것은 팔란티어 AI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틸은 미국의 또 다른 국방테크기업 안두릴에도 초기 투자했다.
틸은 극우적 세계관과 극단적인 보호주의, 4차산업혁명의 기술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 천문학적인 자본을 가진 ‘페이팔 마피아’를 통해 워싱턴 정가의 주류 등극을 준비해왔다.<2023년 5월 12일자 내일시론 ‘팔란티어 주가폭등이 불편한 이유’ 참조> 틸은 J.D 밴스 상원의원의 멘토로 그를 실리콘밸리 투자그룹에 합류시켰고, 2022년 밴스가 상원의원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할 때 1500만달러를 후원했으며, 부통령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게 추천한 당사자기도 하다. 틸의 주도로 트럼프의 선거 전략가 스티븐 배넌, 극우 성향의 트럼프 추종자 마저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 폭스뉴스 등이 밴스 부통령 후보 옹호자들이다.
틸은 미국의 기득권 체제(딥 스테이트)를 무너뜨리려 한다. 그는 구글(현재 알파벳) , 바이든 민주당, 아이비 리그 대학 등을 기득권의 진앙지로 주목한다. 이들 리버럴 기득권이 중국과의 패권 싸움이 아니라 오히려 결탁해 미국의 국익을 배신했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그가 지원해 부통령이 될 밴스는 알파벳에 대한 강력한 분할론자이기도 하다. 트럼트 2기 체제에서 알파벳의 진로가 순탄치 않음을 예견해볼 수 있다.
미국의 기득권 체제 무너뜨리고 금융시장 재편도 노려
이번 미 대선은 트럼프의 완벽한 승리이기도 하지만 그 저변은 사실상 틸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반 리버럴 세력이 트럼프를 내세워 승리한 선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의 큰 정부론을 혐오하고 자유지상주의를 설파하는 이들은 기존 미 주식시장을 이끌었던 매그니피센트7 중 테슬라와 엔비디아를 제외한 5개 기업을 ‘올드AI’로 치부하고 테슬라와 팔란티어를 위시한 ‘뉴AI 그룹’ 주도의 시장질서를 만들 것으로 점쳐진다. 물론 여기에는 가상화폐 기업이 포함될 것이다. 벤처캐피털(VC) 안데르센 호로위는 오픈AI, 스페이스X 등을 키운 실리콘밸리 최고의 VC로 평가받는데 트럼프측에 3000만달러 이상을 기부했으며 가상화폐 산업에 크게 투자했다.
트럼프 가문이 주도하는 트럼프미디어(Trump Media & Technology Group Corp/DJT)는 가상화폐 거래플랫폼 회사 백트홀딩스(BKKT)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관세 및 무역의제를 이끌고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대한 추가적인 직접적인 책임도 맡게 될 상무장관 후보자로 트럼프가 지명한 하워드 루트닉은 피츠제럴드 투자은행의 대표로 암호화폐 회사 테더의 은행업무도 맡고 있다.
안찬수 오피니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