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경처가’ 정치인이 곤란한 이유
전현직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배우자가 앞다퉈 구설수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윤 대통령 정치 입문 이후 4년째 끝없이 구설을 낳고 있다. △허위이력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명품백 수수 의혹 △총선 공천 개입 의혹 등 정말 다채롭다. 이런 김 여사를 두고 윤 대통령은 “제 처를 많이 악마화시킨 것은 있다”고 감쌌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2018년 인도 타지마할 외유성 순방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버킷리스트 외유”라고 비난하자, 문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고 해명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가족들이 당원 게시판에 윤 대통령 부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친윤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은 당원 게시판 논란과 관련 “배우자 진 모 변호사가 몸통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위법적 문제가 아니라면 건건이 설명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진위 확인을 피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부인 김혜경 여사는 전현직 의원 배우자에게 식사를 샀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15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이 대표는 SNS를 통해 “미안하다.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심경을 밝혔다.
정치인 배우자가 잦은 구설에 오르는 건 본인 잘못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배우자까지 정쟁에 끌어들여 경쟁자를 곤혹스럽게 만들려는 ‘정적’의 얄팍한 속셈이 작동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배우자가 국민 심기를 건드리는 ‘일탈’을 저지른 대목까지 무조건 감싸고도는 게 공인인 정치인으로서 옳은 일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작고한 장인의 빨치산 이력이 논란이 되자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고 말해 다수의 공감을 얻었다. ‘빨치산 장인’은 노 전 대통령 아내의 잘못이 아니었다. 국민은 ‘애처가’ 노 전 대통령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정치인들의 ‘배우자 변호’는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구설에 휘말린 배우자 중 일부는 ‘조용한 내조’와 거리가 멀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편보다 더 설친다” “숨은 실세다”라는 뒷말이 많았다. ‘장님무사(대통령)와 앉은뱅이(여사)’ 우화에 빗댄 얘기도 나왔다. 남편이 몰랐을 리 없다. 사실상 배우자의 ‘일탈’을 쳐다만 봤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세간에는 “대한민국 남성 정치인은 대부분 경처가”라는 웃픈 뒷말까지 나온다.
정치인 배우자에게는 일반인보다 엄격한 도덕룰이 적용돼야 한다. 정치인은 그걸 배우자에게 강하게 요구하고 관철해야 한다. ‘경처가’ 정치인이 곤란한 이유다.
엄경용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