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기업들, 트럼프 에너지정책 불편
월스트리트저널 “트럼프의 석유·가스 기부자들 ‘드릴, 베이비, 드릴’ 원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기간 내내 석유·가스 생산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며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쳤다. 드릴 베이비 드릴은 2008년 공화당 전당대회때 처음 사용된 구호로, 미국내 석유와 가스 생산량을 늘려 에너지 독립국이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에 미국의 많은 석유기업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며 거액의 선거기부금도 냈다. 하지만 주요 석유기업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략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석연료 생산증가 … 가격 떨어져 =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2일 ‘트럼프의 석유 및 가스 기부자들은 드릴 베이비 드릴을 원하지 않는다’ 제하 기사에서 ‘이들이 도움받기 원하는 건 자사 제품의 수요를 늘리는 것이지, 화석연료를 더 많이 생산하는 건 아니다’고 보도했다.
이어 트럼프에게 100만달러 이상 기부한 텍사스의 석유사업가 브라이언 셰필드가 “트럼프 말대로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하면 우리 주식은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생산량 증가로 인한 공급가격 인하를 우려하는 것이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18일 ‘왜 대형 석유회사는 대형 규제를 마다하지 않는가’에서 ‘트럼프가 바이든 시대 규제를 철폐하자고 촉구한 것이 모든 화석연료 생산자에게 환영할 만한 소식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바이든정부가 추진해온 메탄배출 수수료 인상을 트럼프가 철회할 경우 석유·가스기업들이 모두 달가와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매탄배출 규제 마다 안해 … 약육강식 논리 = 대기업은 메탄 배출규제를 준수할 여력이 있지만 소규모 기업은 상황이 다르다. 따라서 엄격한 규칙은 소규모 기업을 폐업하게 만들거나 대규모 생산자에게 매각될 수 있다. PDC에너지와 칼론 페트롤리엄 처럼 동종 기업보다 메탄 강도가 높았던 생산자는 대형 기업에 인사된 사례가 있다.
이와 함께 바이든행정부는 그린에너지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화석연료생산을 억제하려고 했지만 대형 석유회사들에게 그리 나쁜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팩트셋(FactSet)에 따르면 2024년말까지 S&P 석유 및 가스 탐사·생산 산업지수에 포함된 4대 기업들은 3300억달러 이상의 잉여현금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의 910달러보다 3.17배 많다.
트럼프의 발언처럼 캐나다·멕시코산 원유에 관세를 부과(25%)할 경우 오히려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아시아 에너지수입국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관세 부과시 미국으로 갈 캐나다·멕시코산 원유가 아시아로 향하면서 가격인하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전망이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에너지분야 과제중 하나는 미국산 석유·가스 수출을 늘리려는 야심과, 대규모 관세부과시 발생할 수 있는 무역문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엑손모빌 CEO “파리협정 탈퇴시 불확실성 커져” = 한편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CEO) 대런 우즈는 지난달 12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파리 기후협정에서 탈퇴하면 불확실성이 생기고 기후변화의 최악 상황을 막으려는 세계적인 노력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행정부가 바뀌면서 정책의 앞뒤가 흔들리는 것은 기업에 도움되지 않는다”면서 “이는 매우 비효율적이며, 많은 불확실성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그는 “엑손모빌은 2027년까지 이산화탄소포집, 수소 등 저탄소 기술개발에 약 2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해당 기술을 지원하는 정부정책이 크게 바뀌면 단기적으로 투자를 조정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에너지문제 분석가 폴 샌키는 “주요 석유회사들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그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건 모든 규칙과 규정이 다시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