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경찰관에 고발당한 지휘부

2024-12-05 13:00:53 게재

내란·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공수처에 … 야권선 ‘미리 알고 준비’ 의혹

전·현직 경찰들이 계엄 선포·해제 사태와 관련해 경찰청장과 서울청장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또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을 전후해 국회 정문을 폐쇄한 경찰 대응을 놓고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야권에서는 경찰의 해명에도 지휘부가 비상계엄을 미리 알고 준비했다는 의심도 나온다.

민관기 전 전국경찰직장협의회(경찰직협) 위원장을 비롯한 전·현직 경찰 3명은 4일 조지호 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서울청 공공안전부 차장, 서울청 경비부장을 내란·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피고발인들은 부당한 계엄령 선포, 집행 과정에서 국회의원의 직무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고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조 청장 등이 경찰을 동원해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막고 국회의 입법 기능을 정지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 청장에 대해 계엄령을 적극적으로 집행한 책임이 있고, 서울청장과 공공안전부 차장, 경비부장은 집행을 위한 공모 관계라고 주장했다.

전날 계엄령 선포 뒤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는 국회 경비대와 영등포경찰서 직원 등이 담장을 따라 배치됐다. 이들이 국회 출입을 통제하면서 시민과 충돌이 발생했고 국회의원이 출입을 제지당하기도 했다.

◆“이근안 아니라 고 안병하 치안감 따라야” =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을 전후해 국회 정문을 폐쇄한 경찰 대응을 놓고 내부망에서 일선 경찰관들의 공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남청 소속 A씨는 4일 경찰 내부망 ‘폴넷’에 ‘지휘관은 경찰을 정권의 보호막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국민을 적으로 돌린 정권의 편을 들면 당장은 좋을 수 있겠지만, 머지않아 국민이 경찰을 적으로 여길 것”이라며 “국민을 탄압하고 정권을 보호한 지휘관들은 반드시 그 죄의 대가를 받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 글이 올라온 시점은 경찰이 국회를 통제하는 아래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던 때다.

A씨는 “몇년 전, 행안부 경찰국 설치에 의기 넘치게 반대했던 지휘관님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고 지금도 믿고 있다”면서 “1980년 광주에서 시민을 지킨 고 안병하 치안감을 생각하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안 치안감은 육사 출신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중령으로 예편해 1962년 치안국 총경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때 전남경찰국장(경무관)이었던 그는 신군부의 시위대 강경 진압 지시를 거부하고 다친 시민을 치료했다. 이로 인해 그는 그해 5월 26일 직위해제돼 군 보안사에 구금돼 조사받고 6월 2일 의원면직됐다. 이후 고문 후유증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 1988년 10월 10일 숨을 거뒀다.

경찰은 2017년 안 치안감을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했다. 광주에서는 안병하기념사업회가 매년 추모식을 지내고 있다.

A씨 글은 4일 오후 3시 현재 조회수가 1만3000회를 넘었다.

경남청 소속 B씨는 “대한민국 경찰이 국민의 종복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정권의 개가 되지는 않겠다”고 적었다.

그는 “경찰에게 국민의 적이 되라고 한다”면서 “역사를 배웠으니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특히 B씨는 “우리가 따라야 할 선배는 광주에서 ‘국민은 경찰의 적이 아니다’라고 군사쿠데타 세력의 발포명령을 거부한 안병하 경무관이지 서울대생 박종철을 물고문으로 죽인 이근안이 아니다”고 밝혔다.

강원청 소속 C씨도 계엄선포 직후 “내가 경찰청장이라면 지금 즉시 가용 경찰력을 총동원해 국회의사당을 지킬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이 헌법에 따라 자신들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과연 부당한 명령이 있을 경우 따르는 게 맞는가” 등 실명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야권, 최근 경찰 지휘부 인사 의심 =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5일 전체회의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경위와 관련해 긴급 현안질의를 한다.

여야 합의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현수 행안부 경찰국장을 부르기로 했다. 경찰에서는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해 서울청 공공안전차장, 서울청 경비부장, 서울청 기동본부장, 영등포경찰서장, 국회경비대장 등이 출석 요구를 받았다.

이날 질의에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직후 경찰의 대응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등에서는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경찰이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전날 계엄령 발표 약 4시간 전인 오후 6시 20분쯤 대통령실로부터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는 취지의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청장은 계엄령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언질은 없었고, 자신도 윤 대통령 담화를 TV로 접하며 계엄 사실을 알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야권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한 뒤 불과 30분 만에 기동대가 국회를 에워싸고 출입을 막은 점 등을 들며 경찰이 이런 상황을 미리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하고 있다.

특히 야당에서는 최근 경찰 지휘부 인사 등이 계엄을 준비한 인사였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조지호 경찰청장의 경우 현 정부들어 대통령직인수위를 거치는 등 발탁된 인물로 알려졌다. 또 김봉식 서울경찰청장도 윤 대통령과 오랜 개인적 인연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은 또 계엄 선포과정에서 군·경의 ‘충암고’ 라인도 작동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조직법상 경찰청을 소속 기관으로 두는 행정안전부의 이상민 장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여기에 대통령실 경비와 관련한 101경비단장도 충암고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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