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 제약사, 비만약 열풍에 올라타
닛케이아시아 “글로벌 수요 못 따라잡는 공급에 제네릭·공동개발·독자개발 등으로 기회 모색”
지난 3년 오젬픽(세마글루타이드) 등 당뇨병·비만 치료제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와 미국 ‘일라이 릴리’에게 금광이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두 회사는 전세계에 해당 치료제를 판매해 총 362억1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6.7% 늘었다. 이 시장은 향후 지속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이에 중국과 인도의 제약사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두 나라의 비만 성인인구는 미국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하지만 신약에 대한 접근성은 미국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이는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가 생산량의 상당량을 미국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비싸게 판매할 수 있다. 이는 생산비용이 저렴한 중국과 인도의 제약사들에게 기회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7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인도 제약사 ‘바이오콘’은 물질특허가 만료된 노보 노디스크의 구형 치료제(리라글루타이드) 제네릭 버전을 이달부터 영국에서 시판하기 시작했다. 바이오콘은 러시아와 이스라엘에서도 판매 승인을 받았으며 미국과 유럽연합(EU)에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바이오콘 CEO 싯다르트 미탈은 닛케이에 “2026년 물질특허가 만료되는 노보 노디스크의 신형 약물(오젬픽) 제네릭 버전은 내년 초부터 신흥국들과 판매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만치료제 시장은 미국을 넘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전세계 성인비만율은 지난 30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했고 청소년비만율은 4배 늘었다. 세계비만연맹(WOF)은 내년 인도·태평양 지역 2억7753만명을 포함, 전세계 비만 성인인구가 10억1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 국가보건위원회는 중국 국민의 절반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며 2030년에는 그 비율이 65.3%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과학저널 ‘플로스 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인도의 과체중·비만 비율은 2030년 중국의 절반 수준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중·인도 비만인구↑ … 치료제 공급 부족
오젬픽(세마글루타이드)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라는 약물이다. 체내에서 뇌의 수용체가 포만감의 신호로 해석하는 자연발생 호르몬처럼 작용해 식욕을 감소시킨다.
천연상태의 GLP-1은 몇분 안에 체내에서 분해된다. 반면 노보 노디스크 세마글루타이드는 오래 지속된다. 구형 리라글루타이드는 매일 투여하지만 신형 세마글루타이드는 매주 주사제로 이용할 수 있다.
인도와 중국의 경우 노보 노디스크의 세마글루타이드 물질특허가 2026년 만료된다. 따라서 바이오콘을 비롯한 인도와 중국 제약사들은 복제약을 자체 생산할 계획이다.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의 특허만료는 그보다 6년이 더 걸린다.
바이오콘은 인도에서 판매하는 세마글루타이드 제네릭 가격을 주사기당 최소 6000루피(71달러)로 책정할 계획이다. 현재 노보 노디스크의 오리지널 약은 인도 비공식 채널에서 주사기당 1만2000루피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바이오콘과 경쟁하는 인도 제약사 ‘닥터 레디스 래버러토리즈’나 ‘루핀’ 역시 특허가 만료되는 첫날 세마글루타이드 복제약을 출시할 계획이다. 썬 파마슈티컬 인더스트리, 씨플라, 낫코 파마, 알켐 래버러토리즈 등 다른 인도 제약사들도 임상시험 후기 단계의 GLP-1 제제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최소 8개의 제약사들이 세마글루타이드의 제네릭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 ‘항저우 지우위안 유전자공학’의 GLP-1 마케팅 책임자인 첸 중레이는 최근 홍콩 기업공개(IPO)에서 “2026년 3월 20일 노보 노디스크의 특허가 만료되는 대로 중국에서 세마글루타이드 제네릭 버전을 출시할 것”이라며 “아시아 및 남미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우위안의 리라글루타이드 제네릭 버전은 지난해 중국에서 첫 판매 승인을 받았다.
첸은 “리라글루타이드 생산라인을 활용해 세마글루타이드를 생산할 것”이라며 “승인을 받고 생산을 시작하면 얼리버드라는 확실한 이점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우위안은 자사의 세마글루타이드를 노보 노디스크의 오리지널약보다 2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할 방침이다.
홍콩증시 상장 제약사 ‘이노벤트 바이오로직스’는 다른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일라이 릴리와 함께 ‘마즈두타이드’라는 새로운 GLP-1 약물을 개발중이다. 마즈두타이드는 임상시험 후기단계에 있다. 내년 6월 이전 판매될 전망이다.
이노벤트는 마즈두타이드를 체중관리 치료제로 먼저 시판한 후 당뇨병 환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일반적인 GLP-1 승인순서와는 거꾸로다. 이 회사 임상개발 수석부사장인 치엔 레이는 닛케이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체중관리에 대한 수요가 당뇨병 수요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그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다른 중국 제약사들은 자체적으로 토종 GLP-1을 개발하는 다소 위험한 길을 택했다. 상하이증시 상장기업 ‘감리약업’이 개발중인 ‘GZR18’은 세마글루타이드에 비해 주사횟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약물은 중국 임상시험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
이 제약사의 최고사업개발책임자인 리 지는 “미국 당국과 승인절차 시작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GZR18의 알약 버전도 시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20년 넘게 인슐린을 생산해왔다. 대량생산능력을 갖고 있다”며 “따라서 우리는 경쟁사들보다 비용을 더 잘 관리한다. 가격책정에 더 많은 유연성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이징 QL 바이오파마슈티컬’은 한달에 한번만 복용하면 되는 ‘ZT002’라는 GLP-1 약물을 테스트하고 있다. 이 회사 설립자이자 CEO인 장쉬쟈는 지난 9월 마드리드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약물 예비결과를 발표하면서 “한달 간격으로 복용하면 비만환자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추가적인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10년은 서구 제약사가 여전히 강세
하지만 현재로서는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가 여전히 전세계 GLP-1 약물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영국 의학저널 ‘The BMJ’에 따르면 인도에서 판매되는 GLP-1 약물 매출은 올해 36억달러로 지난해 대비 2배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미국에서 5개의 최신 GLP-1 약물을 출시했지만, 인도에서는 노보 노디스크의 세마글루타이드 정제인 ‘리벨서스’ 하나만 공식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두 회사는 나머지 4개 약물에 대해서도 승인을 받았지만 다른 시장에 집중하는 탓에 아직 인도 내 마케팅 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인도 뭄바이 소재 ‘맥쿼리캐피털’의 제약산업 연구분석가 쿠날 다메샤는 “인도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라며 “2026년 세마글루타이드의 제네릭 버전이 판매될 때 변곡점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우위안의 IPO 안내서에 제시된 전망에 따르면 올해 중국 내 GLP-1 약물 매출은 지난해 대비 88.6% 증가한 166억위안(23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8월 중국에서 당뇨병 치료제로 출시된 오젬픽은 지난해 전체 GLP-1 약물 매출의 55% 이상을 차지했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의 구형 당뇨병 치료제는 30% 이상을 점유했다.
중국당국은 올해 5월 일라이 릴리의 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를, 7월엔 이 회사의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를 승인했다. 일라이 릴리는 지난 10월 “중국 시장과 유럽 수출을 위한 비만·당뇨병 치료제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쑤저우 공장에 2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노무라증권은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향후 중국 현지 제약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지만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대규모 투자와 브랜딩 및 연구개발 강점을 결합하면서 2033년까지 중국 GLP-1 시장의 약 80%를 점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항저우 지우위안 유전자공학의 첸 중레이도 “단순히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거대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의 점유율을 빼앗기 힘들다”며 “중국 토종 의약품이 병원에서 실제 사용되기까진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다”고 인정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