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북극항로 부산 경쟁지, 인천 아닌 나진
북극항로 개발이 기후변화 속도와 불확실성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기후변화가 가져올 새로운 무역루트로 꾸준히 조명받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북극항로를 이용한 에너지와 물자수송 비중을 늘려왔다. 미국은 경제 안보 측면에서 북극해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새로운 해양전략의 핵심 중 하나로 설정했다. 우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이 북극해를 둘러싸고 벌이는 ‘오션 그레이트 게임’(홍승용 전 해양수산부 차관)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을까.
한국해양대학교와 신해양강국국민운동본부, 국회 바다와미래연구포럼은 10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해양없이 글로벌 허브도시 없다’를 주제로 지·산·학·연 포럼을 열었다.
여기서 허윤수 부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극항로 상용화가 글로벌 허브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천항에서 북극항로를 연결하려면 남쪽으로 내려와 돌아가야 하지만 부산항은 북극항로와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지경학적 이점이 있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발표를 들으며 글로벌 허브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이 북극항로가 바꾸고 있는 세계와 지정학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부산의 경쟁지는 인천이 아니라 북한 나진항이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항일 가능성이 크다.
나진항은 북한 중국 러시아 접경지역과 인접하고 동해와 태평양으로도 진출할 수 있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항은 무르만스크에서 러시아 북극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북해항로의 동쪽 종점이자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시종점이다.
글로벌 경쟁의 시대에는 살기 위해서라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 산업화 민주화를 일군 선배들도 세계화에 적극 나섰는데 탈세계화시대에 새로운 생존전략을 짜야 할 우리는 말할 나위도 없다. 윤석열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내세우며 러시아와 갈등을 키울 때 북극의 ‘오션 그레이트 게임’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가 되면 북극항로와 북극해를 이용할 수 있을까.
미 연방의회는 중국에 뒤처진 해양력을 회복하자며 초당적으로 새로운 해양전략을 담은 의회 지침서를 채택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이를 주도한 공화당 정치인 2명을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에 내정했다. 새로운 해양전략을 짜던 사람들이 트럼프 2기 세계질서를 디자인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해양계가 국내적 시야를 넘어 탈세계화·기후변화에 대응한 오션 그레이트 게임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길 기대한다.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를 외치며 해양수산부를 만들었던 30년 전의 세계가 바뀌고 있다.
정연근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