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20년, 새로운 도전과 희망 4
고교생들, FTA와 농업변화 데이터로 배운다
대구 혜화여고, 충남 온양여고에서 열린 FTA 교육 현장 … FTA 체결 후 상관관계 분석 등 참신한 과제 눈길
2004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20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59개국을 대상으로 21건의 FTA가 발효되면서 다양한 수입 농산물이 국내에 들어왔다. FTA로 인해 우리 농업분야는 큰 피해를 봤지만 반대 급부로 경쟁력이 강화된 품목도 있다. 내년에는 농업 분야 통상압력이 더 강해질 전망이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내년부터 농업분야에도 상당한 개방 압력이 밀려올 것이다. 한미 FTA 개정 압박도 예상된다. FTA 20년 교훈을 통해 농업분야 미래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스마트농업과 연계한 K-푸드 확장성을 키워내는 일이 시급하다. 내일신문은 고교생 FTA데이터 교육을 통해 FTA가 국내 농업분야에 미치는 연구를 2022년부터 시작했다. 우리 농업이 FTA에 맞서 어떤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지 고교생 시각으로 지난 3년간 다양한 과제도 제시했다.내일신문은 5회에 걸쳐 강력해진 세계 농업 보호주의를 점검하고 국내 농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아 본다. <편집자주>편집자주>
내일신문과 내일교육은 올해 ‘자유무역협정(FTA), 학교로 가다 3.0’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전국 15개 고교에서 450명이 참여했다. 참여 학생들은 2~3일에 걸쳐 ‘FTA 데이터를 활용한 통계와 계량경제학 기초 실습’ 후 3인 1조로 조별 탐구 주제를 선정,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했다.
참가자들은 일반 학교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본격적인 데이터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과 FTA 개념을 주제로 경제·사회 개념을 깊이 다뤄볼 수 있었다는 점이 의미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막연했던 개념을 실체적으로 이해하며 수학·경제 교과 학습의 깊이를 더하고, 진로를 보는 시야도 넓어졌다는 평가다.
대구 혜화여고와 충남 온양여고에서 진행된 수업을 지면에 담았다.
◆대구 혜화여고
“미국산 오렌지 가격과 환율은 어떤 관계일까.” 김승규 경북대 RISE연구센터 교수는 10월 30일 대구 혜화여고에서 이같은 주제를 던졌다. 최근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국내외 작황이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전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처럼 습하고 더운 여름이 길어진다면 조만간 남해안의 김 대신 제주도에서 재배한 망고가 수출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농수산물 수출입은 이제 단순한 무역이 아니라 식량 주권으로 이어지는 문제인 만큼 무역 산업의 이해는 필수다. 하지만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데도 대중의 관심이 가장 부족한 산업 중 하나가 바로 농·식품업”이라고 덧붙였다.
‘FTA, 학교로 가다’는 학생에게 농업·수산·식품 산업, FTA와 관련한 경제 및 사회 문제를 가르치고 데이터를 활용해 직접 실증 분석과 시사점 도출까지 이끌어낼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부터 강의진에 합류해 혜화여고 학생과 2년째 만나고 있다. 지난해엔 김 교수가 모든 강의를 맡았지만 올해는 혜화여고에서 수학을 담당하는 강민창 교사가 1일 차 수업을 맡았다. 1·2일 차 모두 교수가 강의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참여 학교의 교사를 대상으로 사전 연수를 진행했고, 교사가 직접 수업 주체로 수업하는 모델로 발전했다.
강 교사는 미리 엑셀을 사용해 회귀 분석을 하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다들 집중력을 발휘해 수업에 참여했다. 회귀분석이란 하나의 변수와 다른 여러 변수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통계 기법으로 데이터에 기반을 둔 의사 결정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와 미국이 무역할 때 두 나라의 GDP, 환율, FTA 체결 여부 등의 변수를 고려해 미국산 오렌지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식이다. 여러 조건에 따라 국내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무역이나 경제 분야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분석법이다.
혜화여고에서 수학을 담당하는 강 교사는 고등학교 과정에서 ‘확률과 통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특히 상경 계열을 지망하는 학생에게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말했다. 강 교사는 단시간에 FTA의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겠지만 올해 참여한 1학년 학생이 배운 내용을 토대로 내년엔 자신의 탐구 활동 영역을 넓혀갔으면 하는 바람을 함께 전했다.
평소 데이터 분석에 관심이 있었다는 1학년 박지우 학생은 국제 무역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동안 막막했던 엑셀 활용법을 배워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향상됐다고 전했다.
“데이터 분석이 실제 의사 결정 과정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됐다. 특히 FTA와 관련된 데이터를 다루면서 국제 무역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배울 수 있어서 유용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정책이 어떻게 수립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또한 회귀 분석을 통해 변수 관계를 도출해 보니 데이터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의미 있는 정보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어 의미있었다.”
2학년 정다윤 학생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국제 정세에 관심이 높아졌다. 더불어 FTA 같은 무역 협정이 경제 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세계적인 정치 상황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 이번 수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관세청의 수출입 자료를 바탕으로 GDP와 환율 등을 이용해 직접 회귀 분석을 해보고 결과를 도출한 과정이 인상 깊었다. 앞으로 학업이나 진로를 결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수업을 맡은 김 교수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고등학생에게 국제 무역과 경제에 관한 강의가 지속적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며 “많은 학생이 농어촌의 현실과 어려움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경북대 같은 거점 대학을 제외하면 다수 사립대에서는 관련 학과가 통폐합되고 있어 미래 세대의 연구자 양성 관점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충남 온양여고
충남 온양여고는 올해 처음으로 ‘FTA, 학교로 가다 3.0’에 참여했다. 수학 교사에게 기초 데이터 활용·분석을 배우고,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순병민 교수의 FTA 개념과 현황 소개 강의를 들은 후 팀을 꾸려 관련 주제를 선정, 탐구 활동을 진행·발표했다. 학생들은 주제 찾기부터 데이터 수집·가공·분석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서종화 온양여고 교사는 “농경제와 관련 있는 FTA를 소재로 한 데이터 수업이라 참여했다. 실제 인문 성향 학생이 다수 참여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5개조를 구성해 각각 조별 탐구 주제를 선정,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했다. ‘중국, 한국 FTA 체결이 한국 농업법인 매출액에 미친 영향’ ‘FTA 체결 이후 윤리적 소비 트렌드와 검색량 증가에 따른 수입량 분석’ ‘망고 수출국을 방문한 우리나라 관광객 수에 따른 망고 수입량 변화’ ‘FTA 체결에 따른 비관세 장벽이 수산 식품의 수출 과정에 주는 영향’ ‘2022 한일 FTA 회귀분석 탐구’ 등 참신한 주제로 모두 호평을 받았다.
서 교사는 “FTA 수업은 원리를 배울 뿐 정해진 틀이 없어 주제가 다양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라면 수출량과 반도체 생산량을 묶는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많았지만 관련 데이터를 가공하고 가설을 증명하다 좌절하고 다시 아이디어 정리부터 시작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숱한 시행착오는 학생들에게 넓은 시야와 도전의 경험을 줬다. 서 교사는 “경영·경제 지망생은 탐구 활동 소재가 홍보나 회계에 집중됐는데 수업 참여 후 농경제, 수출입, 무역 조약 등으로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서 교사에 따르면 공학 계열 지망생은 데이터 활용법을 익힌 것 자체가 유익하다며 내년에도 참가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서 교사는 특히 “데이터 처리 관련 조사 방법이나 가설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회 선생님을 찾아 확인하고, 수업에서 진행한 과제를 창의적 체험 활동 등에서 심화해나가는 등 자연스럽게 교과-진로를 넘나드는 융합 활동이 됐다”며 “다양한 실생활 이슈를 교과 지식과 연계해 파고드는 경험을 쌓을 수 있어 매우 유의미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이번 수업 참여로 FTA에 대한 이가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주 학생은 “경영 및 회계 분야를 지망하고 있어 이번 교육에 참여했다”며 “엑셀을 배우고 FTA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다빈 학생은 “통합사회 경제 등 사회 과목에서 접했던 FTA 개념을 직접 활용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서 참가했다”고 전했다.
민채은 학생은 “경제를 배우며 국제 무역과 우리 사회의 연관성을 고민하던 중이었고, 엑셀을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한다는 점에 끌렸다”고 말했다.
이들 학생은 탐구 과정에서 처음 접하는 용어 등이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김태주 학생은 “처음 접하는 용어가 많아 어려웠다”며 “찾아보니 용어는 경제 교과서에 잘 설명돼 있었다. 데이터 수업을 비롯해 곳곳에서 유용하게 쓰임을 알고 나니 교과서가 달리 보였다”고 전했다. 특히 “경제나 다른 사회 과목에서 배운 무역 이론을 바탕으로 실제 사례를 비교·분석해보니 좀 더 이해가 쉬웠고, 그 결과 우리팀은 무역에 가장 영향이 큰 중국과 FTA에 주목해 분석 범위를 좁혀 ‘한중 FTA 체결이 우리 농업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주제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조유빈 민채은 학생은 “아무래도 데이터를 우리가 직접 선정·선별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며 “질 좋고, 시기가 적절하며, 우리가 선정한 주제에 떨어지는 데이터를 구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 학생은 데이터 수집에서 난관에 부딪혀 주제만 5번 이상 바꿨다고 한다.
이승희 이임주 학생은 “데이터 분석도 쉽지 않았어요. 한중 FTA 체결 전후의 데이터를 살피는 과정에서 변수 간 상관관계가 예상과 달리 나타났다”며 “종속 변수에 영향을 줄 독립변수를 찾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싶어 선택 기준을 재검토하고 불필요한 변수를 제거한 뒤, 단계마다 회귀분석을 시도했다”고 해결과정을 설명했다.
학생들은 이번 교육 과제를 더 심화학습할 게획이라고 밝혔다. 조유빈 학생은 “엑셀 수업이 흥미로웠어요. 일일이 해야 하는 단순 작업이 클릭 한 번에 바뀌는 게 신기 했다”며 “탐구 활동을 하며 데이터 해석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앞으로 다른 수업이나 활동에서도 데이터 분석 도구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태주 학생은 “엑셀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점이 좋았어요. 내년에 확률과 통계 를 공부할 때 이번에 배운 회귀분석을 한 번 더 적용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승희 학생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체감했다”며 “진로도 보다 구체화됐고 데이터 기반의 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싶어졌다”고 전했다. 이임주 학생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경상수지, FTA, 수입·수출액 등 경제 수업에서 배운 개념을 구체적 사례로 배울 수 있어 좋았다”며 “무엇보다 데이터 간 관계 분석에 관심이 생겨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은 한중 FTA 체결 이후 국내 농업 법인 매출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가설을 세운 후 체결 전후 농업법인 매출액, 경상수지, 중국 농산물 수입액, 국내 농업법인 재배 면적 등을 변수로 회귀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민감 품목 설정 등의 국산 농산물 보호를 위한 대안도 제시했다.
황혜민·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hyemin@naeil.com
제작지원 2024년 FTA 분야 교육홍보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