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이길 대선, 왜 작게 이겼나” 윤 대통령 잠식한 부정선거 공상
“이준석 때문 → 총선참패 후엔 부정선거로 기울어”
야당 “계엄 체포 명단에 양정철·선관위원도 포함”
“대통령 담화를 보며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더 크게 이길 대선을 왜 작게 이겼는지 의아해하더니 결국 부정선거에 꽂힌 거 아니냐”
윤석열 대통령은 12.12 기습 담화에서 불법계엄을 선포한 핵심 이유로 부정선거 의혹을 들었다. 윤 대통령을 대선 때 도왔던 인사들은 윤 대통령이 애초부터 대선 결과에 대해 가졌던 의문을 키워가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잠식된 것으로 해석했다.
12일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다”며 선관위의 허술한 시스템을 ‘차마 밝히지 못한 심각한 일’로 지목했다.
윤 대통령은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선관위)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방화벽도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도 문제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개선되었는지 알 수 없다”면서 “그래서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관위에 대한 계엄군 지시를 인정한 것은 물론, 여당이 참패한 22대 총선 관련해서도 ‘부정선거’가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표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을 대선 때부터 지켜본 한 인사는 “(윤 대통령은) 대선 결과에 대해서도 왜 더 크게 이기지 못했는지 의아해 했었다”면서 “정치적으로는 이준석 전 대표 때문에 그렇다고 봐서 이준석 쫓아내기에 진심이었다면, 22대 총선까지 참패하고 나니 본격적으로 부정선거론에 함몰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에도 선관위에 대한 불신과 부정선거에 대한 경계감을 계속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였던 윤 대통령은 2022년 3월 6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투표관리는 상당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면서 “지금 선관위가 정상적 선관위가 맞느냐. 나라가 곪아터지고 멍들어도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선관위를 비판했다.
신용한 전 윤석열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이 뉴스타파에 공개한 문건에선 부정선거 배후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지목하고 부정선거를 밝힐 방법으로 선관위 서버와 로그인 기록 확보를 들었다. 이는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극우 유튜버들은 부정선거의 핵심으로 선관위 서버 조작을 들어왔다.
민주당에선 계엄 당시 체포 명단에 양 전 원장과 문재인 정부 시절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이었던 조해주 전 선관위원이 포함돼 있었다는 제보를 공개하며 윤 대통령의 계엄 배경에 부정선거론 공상이 있었다고 봤다.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극우 유튜버 논리에 심취해 있었다는 정황도 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과 여사가 국무위원들이나 주변에 극우 유튜브 링크를 보내거나 추천한 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담화에서 선관위를 6번 언급하며 비난하자 선관위는 국정원의 해킹 당시에 국정원 요구에 따라 보안시스템을 미가동한 사실, 22대 총선 전 실시한 보안 강화 조치 등을 밝히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선관위는 특히 “설령 선거 시스템에 대한 해킹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선거에서 부정선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수의 내부 조력자가 조직적으로 가담해 시스템 관련 정보를 해커에게 제공하고, 위원회 보안 관제 시스템을 불능 상태로 만들어야 하며, 수많은 사람의 눈을 피해 조작한 값에 맞추어 실물 투표지를 바꿔치기 해야 하므로 사실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12일 대통령 담화 후 조금씩 언론대응을 재개하는 등 탄핵 국면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도 이날 담화를 하며 ‘2선 후퇴’라는 여당과의 약속을 이미 깬 만큼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률안 등 42건을 재가하며 대통령 권한을 행사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