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스타트업 활성화…도산도 급증

2024-12-16 13:00:04 게재

2025년 일본기업 재편 가속화할 듯 … 중소기업, 후계자 부재로 자연소멸 확산

올해 일본 경제계에서 큰 현안인 세븐일레븐과 일본제철 등 기업 인수합병(M&A) 논란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M&A 대상(세븐일레븐)과 M&A 주체(일본제철)라는 점은 다르지만, 유통과 철강산업을 대표하는 두 기업의 운명과 관련된 문제여서 정치권과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 높다.

일본은 내년부터 65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의 30%를 넘어설 전망이다. 경영 후계자가 없어 사라지는 중소기업도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다. 한편에서는 첨단산업 중심의 스타트업 활성화로 경제에 활력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2025년 경제 3대 트렌드’로 △인수합병 △대도산시대 △스타트업 활성화를 예측했다.

내년 M&A 5000건 넘어설 전망

일본 편의점 업체 ‘세븐일레븐’은 올해 11월 말 기준 일본 국내에만 2만1600여개를 비롯해 글로벌 체인을 통해 매출 5조3500억엔(약 50조원)을 자랑하는 일본 최대 유통업체다. 일본 국민의 실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세븐일레븐을 올 여름 캐나다 편의점 업체 ACT가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 충격파를 던졌다. 8~9조엔(약 80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인수 금액도 충격이지만 일본 국민기업을 다른 나라 기업이 인수하려 한다는 데 대한 자존심과도 맞물려 논란이 커졌다.

외국계 기업과 글로벌 사모펀드가 일본 기업 M&A와 전략적 지분투자에 관심을 갖는 데는 그만큼 기업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정부가 2019년 ‘공정한 M&A 지침’과 지난해 ‘기업매수 행동지침’ 등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접근성도 높아졌다. 칼라일그룹이 올해 5월 일본 기업에 대한 투자 전용으로 조성한 4300억엔(약 4조원) 규모의 펀드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다만 여전히 외국계 기업의 일본 기업 인수(OUT-IN)가 M&A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5% 수준에 그친다.

기업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리코프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 말까지 일본 기업과 관련된 인수합병 금액은 14조7900억엔(약 139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일본 기업의 외국계 기업 인수합병(IN-OUT)은 48.1%, 일본 기업간 M&A는 31.4%에 이른다. 일본 기업이 인수 주체가 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제철의 미국 철강산업 자존심인 US스틸 인수를 둘러싼 논란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4일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계획이 분수령을 맞고 있다”면서 “바이든과 트럼프 두 대통령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미 당국의 인수합병 승인까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본제철의 인수 가격은 약 2조1500억엔(약 20조2000억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 대형 증권사 간부는 닛케이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세븐일레븐 인수 건은 지금까지 없던 획기적인 사안으로 경제계에서 다양한 해석과 움직임을 불러왔다”며 “기업간 M&A는 2025년 일본 경제의 큰 테마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쓰구치 아츠시 미쓰비시UFJ증권 총괄책임자는 “동의없는 매수 제안도 늘어나고 있다”며 “과거에는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는 시각이 강했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 등을 계기로 건설적으로 수용하는 흐름도 커졌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7월 니덱이 사전에 동의를 얻지 않고 공작기계 업체 다키사와에 대한 주식공개매수를 추진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흐름은 도쿄증권거래소가 기업가치 제고의 일환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과도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향후 일본 기업의 인수합병 활성화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와구치 도시후미 리코프데이터 대표는 “인수합병 건수가 올해는 지난해보다 20% 증가한 4800건 정도될 것”이라며 “2025년에는 5000건을 넘어설 전망”이라고 말했다.

연간 1만개 기업 무너지는 ‘대도산시대’

일본 안에서는 ‘2025년 문제’라는 용어가 있다. 내년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75세 이상 되고,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전체 국민의 30%는 65세 이상이다. 고령화는 기업활동에도 결정적 어려움을 조성한다.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누적 기업도산 건수는 지난해 동기보다 18.8% 증가한 8219건에 이른다. 월간 기준으로 30개월 연속 전년도 동기를 웃돌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 1만건이 넘는 기업 도산이 예상된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이를 ‘대도산시대의 도래’라고 했다.

도산이 급증하는 데는 경영이나 재무상 파산이 아닌 ‘2025년 문제’로 집약되는 고령화의 영향도 크다. 경영자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재에 따른 ‘후계자난’에 의한 도산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도쿄상공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후계자 부재에 따른 도산은 전년 동기 대비 10.3% 늘어난 396건이다.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후 가장 많다. 올해 연간 기준으로도 지난해(430건)를 넘어설 전망이다.

제국데이터뱅크 자료를 기초로 17만개 기업을 추출해 분석한 결과 후계자가 부재한 기업의 비중을 말하는 ‘후계자 부재율’은 올해 62.2%이다. 조사를 시작한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 기업 경영자의 연령대는 60대가 47.9%로 가장 많고 70대(31.6%)와 80대 이상(24.0%)이 뒤를 이었다. 개별 기업내 복수의 경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나이토 오사무 제국데이터뱅크 과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면서 “지금 경기가 그때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기업 경영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여전히 도산기업의 대부분은 경영상 어려움에 따른 이른바 ‘좀비기업’이 차지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무이자 무담보로 시행된 ‘제로제로대출’의 상환이 본격화하면서 취약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파산이 속출하고 있다. 올해 비교적 규모가 큰 도산은 부채 6413억엔(약 6조300억원) 규모인 MSJ자산관리와 469억엔(약 4400억원) 수준의 후나이전기 사례가 있다. 분식회계로 도산한 환경경영종합연구소(약 246억엔)도 눈에 띈다. 하지만 여전히 부채 5000만엔(약 4조7000억원) 미만의 소규모 도산이 전체의 60%를 넘는다.

향후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기업대출 금리가 올라가면 취약한 기업의 위기는 한층 커질 전망이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영업이익으로 차입금의 이자도 갚지 못해 금융기관과 정부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의 퇴장으로 기업 재편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정부, 유니콘 기업 100개 육성 목표

우주관련 사업에 도전하는 아스트로스케일홀딩스 오카다 미쓰노부 사장은 “지구 궤도상에서 서비스를 실현해 글로벌 차원에서 경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업체는 우주에서 인공위성을 활용하는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관련 기기의 고장이나 서비스 중단의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우주쓰레기’ 제거를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올해 6월 도쿄 증권거래소 그로스시장에 신규 상장도 했다.

일본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아스트로스케일과 같이 우주분야와 양자컴퓨터, 소재와 생성AI 등 첨단기술 분야에 도전하는 벤처기업이 많다. 최근에는 대학연구소의 연구 성과를 기초로 설립된 대학내 스타트업으로도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다. 도쿄 치요다구에 있는 유저베이스의 ‘스피다’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내 스타트업 자금 조달금액은 1893억엔(약 1조7800억원)으로 5년 전에 비해 2배 늘었다. 와타나베 요코 일본 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은 “이전에는 디지털트렌스포메이션(DX) 등의 분야로 투자가 많이 몰렸다”며 “하지만 최근 1~2년은 딥테크 분야 또는 새로운 영역으로 투자가 몰리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일본 국내 스타트업 전체 자금 조달금액은 여전히 ‘1조엔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스피다에 따르면 스타트업 자금조달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2년 9782억엔까지 늘었지만 지난해는 8039억엔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올해 9월까지 약 175억엔을 조달한 ‘고조앤컴퍼니’ 가타다 고헤이 최고재무책임자는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자금의 확보”라며 “스타트업 업계의 자금조달 수단이 다양해져 수요와 공급을 늘려가면 성공하는 기업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정부는 2022년 ‘스타트업 육성 5개년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7년까지 벤처 생태계를 10조엔(약 94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중장기적으로 유니콘기업 100개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이토 유마 딜로이트벤처서포트 사장은 “일본에서 미래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스타트업이 커나가기 시작했다”면서 “신흥 기업의 주가는 아직 미미하지만 그럴수록 지금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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