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 ‘진짜 위기’로 보는 이유
민심 역행·집안 갈등·미래 실종 ‘3대 악재’ 겹쳤다
계엄 해제 표결 불참, 탄핵에는 반대 … 일부 보수층만 의식
윤-한 갈등으로 탄핵 초래해놓고 “나가라” “못 나가” 또 싸움
차기주자 경쟁력 부진 … 여권주자 지지율 합계, 야권 ‘절반’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두 명의 ‘보수 대통령’이 탄핵 심판대에 올랐다. 박근혜 탄핵 당시 보수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지만 5년 만에 용병을 영입해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된 2024년 12월, 보수는 또 다시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에는 “회복 불능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왜일까. △민심 역행 △집안 갈등 △미래 실종이란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108명 중 ‘탄핵 반대’ 85명 = 국민의힘은 12.3 내란 사태 와중에 국민이 아닌 윤 대통령 편에 섰다는 인상을 남겼다. 지난 4일 새벽 이뤄진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은 단지 18명만이 참여했다. 대부분 친한(한동훈) 의원이었다. 나머지 90명은 불참했다. 한국갤럽 조사(10~12일, 전화면접,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 이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계엄에 대한 의견을 묻자 ‘내란이다’는 답은 71%였다. ‘내란이 아니다’는 23%였다. 국민의힘은 국민이 ‘내란’으로 보는 계엄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은 셈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실시된 윤 대통령 탄핵 1차 투표에 무더기로 불참해 무산시켰다. 14일 탄핵 2차 투표에서는 12명만이 찬성표를 던졌다. 85명은 반대했다. 절대 다수가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것이다. 앞서 한국갤럽 조사에서 탄핵에 대한 입장을 묻자 ‘찬성’ 75%, ‘반대’ 21%였다.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윤 대통령 탄핵을 원했지만, 국민의힘은 민심과 반대로 간 것이다.
국민의힘 핵심당직자는 16일 “지역구 의원 대부분이 영남 출신이라, 전체 국민이 아니라 일부 보수층 민심만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 분열로 망할 판 = 정치권 격언 중에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지만, 국민의힘은 올 한 해 내내 여권 투톱인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다. 검찰 선후배로 가까웠던 두 사람은 한 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정치권에 입문하면서부터 ‘정적’으로 바뀌어 충돌했다.
윤-한 갈등이 내란과 탄핵으로 이어진 전대미문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친윤과 친한은 이후 더 거칠게 충돌하는 모습이다. 친윤 의원들은 친한을 겨냥해 ‘배신자’ 낙인을 찍으며 “당에서 나가라”고 요구하고 있다. 탄핵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친한을 내쫓고 “남은 90명이 똘똘 뭉쳐 살자”는 것이다. 친한은 “계엄을 막고 탄핵에 찬성한 게 왜 잘못이냐”고 항변한다.
양측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일각에서는 분당 시나리오도 흘러나오지만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바른정당의 실패 전례 △한 대표의 차기주자 지지율 하락세 △친한계의 결속력 약화 등으로 인해 “분당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여권주자들 하향평준화 = 국민의힘은 2022년 3월 대선에서 용병(윤 대통령)을 영입했다. ‘조 국 수사’를 통해 윤 검찰총장의 대선 경쟁력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고해도, 여권 차기주자 중 누구라도 여론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면 ‘탄핵 무기력증’을 빠른 시일 내에 탈출할 수 있겠지만 여권 주자들의 상황은 여의치 않은 모습이다.
뉴스1-엠브레인퍼블릭 조사(10일, 전화면접, 95% 신뢰수준 오차범위 ±3.1%p)에서 차기주자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야권에선 이재명 37%, 조 국 6%, 김동연 3%, 김경수 1%로 나왔다. 여권에선 한동훈 7%, 홍준표 5%, 오세훈 4%, 안철수 4%, 원희룡 2%, 유승민 1%였다. 여권에서 선두권으로 꼽혔던 한 대표 지지율이 하락세를 탔고, 나머지 주자들은 정체 상태로 분석된다. 여권 차기주자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지율에도 못 미치고, 야권 주자 지지율 합계의 절반에 불과한 상황이다. 여권 인사는 “여권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강력한 리더십이 보이질 않는다. 여권의 위기가 오래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진단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