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 “계엄도박 키운 담화로 몰락”

2024-12-16 13:00:09 게재

“분노한 국민, 윤 탄핵 가결에 축제 분위기” … “정치적 불확실성 국면 돌입”

탄핵소추안 가결 기뻐하는 시민들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14일 국회에서 가결되자 세계 주요국 언론들은 이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도박’으로 몰락을 자초했다며 시민들의 표정, 향후 정치적 여파와 전망을 분석하는 기사들을 비중 있게 내보냈다.

하루 전 사설을 통해 “윤 대통령이 ‘레임덕’(lame duck)이 아니라 ‘데드덕’(dead duck) 상태”라며 “한국 국회가 탄핵안을 통과시켜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던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를 합법적인 통치 행위로 정당화한 윤 대통령의 전날 대국민 담화를 정권 몰락의 치명타로 지목했다.

가디언은 ‘한국 대통령이 어떻게 자신의 몰락을 결정지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비상계엄령은 단순한 오판이 아니라 (임기) 초반부터 난항을 겪어온 문제의 정점에서 이뤄졌다”며 “국민의힘은 품위 있는 퇴진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도박의 판돈을 두 배로 늘리는 선택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윤 대통령은 하야의 기회를 잡는 대신 비타협적인 연설에서 비상계엄을 통치 행위로 정당화했다”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인사들도 사법 리스크와 여러 논란을 안고 있지만, 윤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자신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CNN방송은 탄핵안 가결을 “윤석열의 도박이 엄청난 역효과를 낸” 결과로 짚었다. 이 매체는 “(한국 국회의) 이 극적인 결정은 윤석열이 12월3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인을 국회로 투입한 후 벌어진 놀라운 정치적 결전의 정점”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비상계엄 선포로 민주주의를 혼란에 빠뜨린 대통령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 탄핵안이 가결됐다”며 시민들로 가득 찬 거리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독일 주간 디차이트는 탄핵안 통과가 “위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탄핵안 가결은 권력 남용을 막고 법치주의를 유지하는데 견제와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는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사이먼 헨더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의 평가를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와 어우러져 국회의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낸 점에 주목했다. WP는 이런 분위기가 “주목할 만하고 고무적”이며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신호”라는 조앤 조 미국 웨슬리언대학 동아시아학 교수의 분석을 전했다.

영국 BBC는 국회의 탄핵안 표결을 실시간 영상뉴스로 내보내면서 “여당 의원들은 조용히 회의장을 나가는 동안,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민주당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고 전했다. “투표 집계 중 일부 여당 의원들이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도 했다.

외신들은 윤 대통령 탄핵 사태가 리더십 공백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울 것으로 전망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탄핵소추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식히고 누가 국정을 이끌지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없앨 것”이라고 관측했다.

하지만 이번 계엄 사태 뒤 한덕수 국무총리 등 고위 각료들과 관련한 “다양한 형사적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리더십 공백의 잠재적 위험은 남아있다”고 짚었다. WSJ은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명확한 선두주자”라고 소개했다.

CNN은 “법률에 따라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지만 그 역시 비상계엄과 관련해 수사선상에 오르는 등 정치적 문제들에 직면해 정치적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며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수 개월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WP도 “한국은 이제 장기적인 불확실성의 기간에 돌입하게 된다”면서 한국의 리더십 공백이 미국의 정권 교체에 따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와 맞물려 발생한다고 짚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권한은 한 총리가 대행하지만, 내정과 외교에 혼란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한국 정국은 혼미가 계속돼 한일관계나 북한 대책을 비롯한 외교·안보 정책에 영향을 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CCTV 등 매체들도 관련 소식을 속보로 전한 가운데,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에는 오후 5시경 ‘윤석열’ ‘윤석열 탄핵안 통과’ 등 키워드 검색량이 급증해 실시간 검색어 10권 안에 들기도 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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