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요구권 가진 한덕수 대행…‘정치적 선택’ 불가피
17일 국무회의 … 야당 단독처리한 6개 법안 심의 가능성
국민의힘, 재의요구권 요청 … 민주당 ‘거부권 불가’ 입장
오는 17일 국무회의에서 여야간 이견이 큰 법안이 심의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가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은 여당의 요청에 발맞춰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에게 재의요구 건의를 해왔지만 이제는 재의요구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는 위치가 됐다.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 야당으로부터, 그렇지 않으면 여당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정치적 판단의 갈림길에 선 셈이다.
17일 열리는 국무회의 안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단독 처리로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국회증언감정법, 양곡관리법, 농산물유통및가격안정법, 농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등 6개 법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총리실 관계자는 16일 오전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안건들은 지금 해당 부처에서 검토 중에 있다”면서 “내일 국무회의에 이 법안들이 안건으로 올라갈지는 오늘 오후에 문체부로부터 제공이 돼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려면 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이 접수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해야 한다. 접수는 관련 법률안이 주무부처에 이송된 날을 기준으로 하는데 이 법안들은 지난 6일 해당 부처에 통지됐다. 거부권은 15일 이내에 행사해야 하는 만큼 오는 21일까지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한 대행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한 대행과의 통화에서 “거부권 행사는 여야간의 정책적이고 정치적 입장 차이가 반영된 것이기에 그 어느 한 쪽을 거부한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적 편향일 수가 있다는 말씀도 함께 드렸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직무대행은 교과서적으로 보면 현상유지와 관리가 주 업무이고 현상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대행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16일 오전 cbs 라디오에서 “권한대행은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에서 올라간 것을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맞지가 않다”면서 “만약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실제 자기의 권한을 넘어가는 범위이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탄핵이든 그런 것도 검토를 해야 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야당이 단독처리한 이 법안들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이들 법은 11월 28일 본회의에서 거대 야당의 폭거로 일방 처리됐고,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재의요구권을 공식 요청했으며 이 요청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밝혔다.
이 법안들에 대해 여야간 대립이 큰 만큼 한 대행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총리실 관계자는 “재의요구권이라는 것은 부처의 찬성 반대 의견과 별개로 행사할 수 있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실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도 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고 있을 당시 고 건 권한대행은 법안 2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특별사면시 국회에 의견을 구하도록 한 국회의 사면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정부의 과도한 재정부담을 이유로 국회에 재의를 요구한 바 있다.
한 대행은 이 법안들 외에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12.3 내란 사태 특검법’에 대해서도 조만간 입장을 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 여부를 두고서 정치권 공세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 특검법의 경우 국회 통과 때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3번째 법안까지 폐기됐으며 4번째 법안의 공포 여부는 한 대행의 손에 달렸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