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에 물어보라”…무거운 침묵 감도는 용산
대통령실, 탄핵안 가결 후 권한대행 보좌 체제
윤 대통령, 취임 2년 7개월 만에 불명예 퇴장
정치 입문 8개월 만에 권력 정점 섰다 급추락
“총리실에 물어보십시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대통령실에는 무거운 침묵만 감돌고 있다. 16일 어렵사리 통화가 연결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모든 국정은 대통령 권한대행인 총리실에서 한다”면서 “(이제부터) 총리실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출근길을 재촉하던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좀 더 상황이 정리되면 이야기하자. 나중에 연락하겠다”며 얼굴을 돌렸다.
◆대통령실 참모 “상황 좀 더 정리되면 보자” = 윤석열 대통령 취임 950일째 날이기도 했던 14일 저녁 7시 24분 이후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대통령 비서실은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 보좌체제로 들어갔다. 15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 대행과 면담하고 보좌방안 등을 보고했다. 정 비서실장은 면담 후 취재진들에게 “앞으로 비서실이 권한대행을 보좌해야 하므로 업무 협조 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논의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은 유지되지만 모든 권한 행사가 정지된 윤 대통령은 관저에서 탄핵심판 및 내란죄 수사 대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교적 소극적으로 탄핵심판에 대응했다면 윤 대통령은 최장 180일의 헌법재판소 심리 기간을 모두 활용하겠다며 법리 공방 의지를 강하게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탄핵소추안 가결 후 1시간 8분 만에 발표한 14일 대국민담화에서도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에서 발표한 담화에서 “힘들었지만 보람찼던 그 여정을 잠시 멈추게 됐다”며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선거에 불리할까 봐 지난 정부들이 하지 못했던 4대 개혁을 절박한 심정으로 추진해 왔다”며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답답하다”고도 했다.
◆사과 빠진 마지막 메시지 = 약 1200자 분량의 담화문에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탄핵으로 인해 초래된 국정공백과 국민혼란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윤 대통령에 앞서 탄핵안이 가결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무 정지 직전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고 “부덕과 불찰로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던 것과 대조된다.
2021년 6월 29일 정치 입문 선언 후 불과 8개월 반(254일)이 지난 2023년 3월에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고, 같은 해 5월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2년 7개월 만에 탄핵 당한 윤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급부상과 급추락으로 요약된다.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인상을 남긴 때는 2013년 국회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했을 때다. 국가정보원 댓글조작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으로서 정권과 불화하던 그는 수사외압을 폭로하며 ‘강직한 검사’ 이미지를 얻었다. 검찰 내에서는 좌천되며 고초를 겪었다.
2016년 12월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검팀’에 합류하면서 날개를 다시 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전성기를 보내던 그는 조 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시작으로 정부와 정면충돌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과 법정다툼까지 벌이자 보수진영의 대선주자로 급부상했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출마해 2022년 3월 대선에서 승리했다.
◆수직상승 그리고 수직하강 = 윤 대통령 취임 후 첫 행보는 청와대 이전이었다. 구중궁궐을 떠나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지였지만 역대 대통령 최초로 실시한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이 6개월 만에 중단되며 오히려 ‘불통’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과 협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오히려 25건의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타협과 화합의 정치보다는 대결의 정치로 기우는 모습이었다.
여당과는 수직적 당정 관계를 유지하며 ‘윤석열당 만들기’ 집착을 보였다. 여당에선 윤 대통령 취임 후 당 대표가 이준석-권성동-주호영-권성동-정진석-김기현-윤재옥-한동훈 등으로 수차례 바뀌는 흑역사를 겪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끝없는 갈등, 김건희 여사 리스크 고조와 이에 대한 소극적 대응, 설상가상으로 정치 브로커 명태균 의혹까지 잇따르며 국정운영동력은 사실상 고갈되고 말았다. 정치적 악수를 되풀이하며 10%대 지지율까지 추락한 윤 대통령은 불법 비상계엄이라는 최악의 자충수를 뒀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발의된 와중에 윤 대통령은 12.12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29분 동안 강변했다. 국민들 사이에선 1분 1초도 윤 대통령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다는 아우성이 커졌다. 결국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며, 급부상했던 윤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급추락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