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집회’ 문화 이끈 2030여성
그들 방식의 참여, 새 모습 보여줘
“이미 각성, 계엄사태에 드러난 것”
지난 14일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퇴진행동)이 주최한 여의도 탄핵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200만명이 참여했다. 이날 단상 앞쪽에는 어김없이 2030 여성들이 자리를 잡았다.
10여일간의 탄핵 집회에서 2030 여성들이 주도한 시위 문화는 줄곧 화제가 됐다. 아이돌 응원봉을 비롯해 K팝에 트로트, 민중가요까지 어우러진 모습은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온라인 동참과 선결제하기 등 다양한 참여도 눈에 띄었다.
박경태 성공회대 교수(사회융합자율학부)는 지난 13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젊은 여성들의 인식이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성장했다”며 “계엄사태 발생이 이들을 (집회로) 이끈 것”이라고 밝혔다. 2030 여성들이 이번에 각성한 것이 아니라 계엄이라는 세대 통합 이슈를 통해 감춰져 있던 것이 드러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남녀 갈라치기 선거전략, 여성가족부 폐지 방침 등 누적된 불만도 이번에 표출됐을 것”이라며 “여성들 사이에 같이 나가자는 움직임도 있었던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젊은 여성들 참여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7일 대규모 여의도 탄핵 집회 참가자 중 20대 여성은 18.9%, 30대 여성은 10.8%를 차지했다. 참가자 10명 중 3명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박 교수는 시위 방식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박 교수는 “그들은 팬덤문화에 충실하게 성장해 왔던 사람들로 자기들만의 놀이 방식, 문화를 그대로 집회에 가지고 왔다”며 “우리는 몰랐던 것을 봤기 때문에 새롭게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문화적으로 한국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국제적 기준에 못 미치는 권위주의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변화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이원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윤정부의 민주주의 퇴행 속에 계엄이라는 시민들이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자 분노한 것”이라며 “탄핵 집회에서 보인 문화는 새롭거나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이어 “패러디도 일반화되어 있던 것들이다”며 “박근혜 탄핵 때도 있었고 그 경험이 쌓여 온라인 참여, 선결제 등 더 창의적으로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14일 탄핵집회 사전·사후 사회를 본 박민주 활동가는 6일 전후부터 여성들 참여가 많아진 것을 느꼈다고 했다.
박 활동가는 “참가자들이 패드에 신청곡이나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여주기 시작했다”며 “이후 신청곡을 받아 활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엄중하면서도 신나는 분위기의 노래 선곡이 참가자들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 만난 60대 서 모씨는 “1987년 6월 항쟁을 경험한 세대로 집회가 재미있다”면서도 “그 안에 있는 비장함과 참담함도 느껴져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원재 집행위원장은 “최근 집회 문화는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다양성이 드러난 것”이라며 “이런 문화는 더 진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