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 이후’를 생각한다 ① 다시 부상한 ‘개헌’

‘제왕적 대통령제’ 수술대 오르나…“대통령 독주 제도적 차단”

2024-12-16 13:00:30 게재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경고성 계엄’도 시도” 분석

우원식 국회의장 주도 ‘2026년 개헌’시계, 앞당겨질 수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정부 개헌 실패 ‘반면교사’

국민의힘 “개헌 논의 적기” 민주당 “본질 흐려, 시기 부적절”

‘경고성 비상계엄 선포’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국회 안팎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수술’을 요구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맘에 들지 않는 야당에 경고하기 위해 계엄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를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제’가 갖고 있는 폐해에서 찾은 것이다. 강력한 권력을 쥐어주니 가능한 모든 권력을 다 사용하려고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개헌 논의가 쉽게 진행될 것 같진 않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입장이 크게 상반돼 있다. 국민의힘은 개헌을 찬성하고 있고 민주당은 반대다. 국민의힘은 개헌을 전면에 내세워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민주당은 ‘윤석열 내란 심판’이라는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의견이 명확하다.

16일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 내용을 보면 국회의 입법 독주나 국무위원 방송통신위원장 검사 탄핵, 예산 감액과 통과 등을 꼽았는데 계엄 선포 이유로는 턱없이 미달된다”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이 많고 강하다보니 이를 제어하는 입법부에 대해 굉장한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입법부에 대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같이 국정운영을 같이 해 나가는 파트너로 보지 않았다”면서 “대통령이 하려고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본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활용해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하려는 욕심으로 옮겨졌을 것”이라고 했다.

헌재, ‘피청구인 윤석열’ 탄핵심판 시작 헌법재판소는 1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하고 탄핵심판 절차를 시작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사건 접수 직후 곧바로 “16일 오전 10시 재판관 회의를 소집했다”며 사건처리 일정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헌재 관계자는 전했다. 사진은 1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모습.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제왕적 대통령제’가 보여준 현실 = ‘경고성 비상계엄’을 단행하기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2년 반 동안의 정치 행보는 입법부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모습으로 점철됐다. ‘입법부 없는 국정운영’에 초점을 맞췄다. 시행령 정치를 고집했고 절대과반 야당엔 거부권과 부적격 후보자 임명 강행으로 맞받아쳤다.

야당 대표는 단 한번 만나는 데 그쳤다. 여당에 대해서도 당내 선거나 공천 등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한동훈 여당 대표를 하대하는 듯한 태도도 논란이 됐다.

국민적 관심사인 이태원 참사 책임자 처벌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채해병 사망과 관련한 군 수사에 대한 대통령의 압력 행사 의혹을 해소하지도 못했다. 부인 김건희 여사의 각종 범죄 의혹을 감쌌고 특검법에 대해 연거푸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집권기간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허점이 극단적으로 드러났고 개헌을 필요성을 보여줬다”며 “개헌과 관련한 논의는 충분히 진행된 상황이고 이제는 선택만 남았을 정도”라고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미 국민 미래 개헌자문위를 가동시켰다. 우 의장은 애초 2026년 6월 지방선거때 개헌 국민투표를 같이 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생각지 않은 ‘윤 대통령 탄핵’으로 개헌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 의장은 “권력구조 때문에 생기는 소모적 정쟁으로 국민들의 실망이 크고, 지역 소멸 문제는 저출생·고령화와도 직결되어 있다”며 “개헌의 시기와 폭은 모두 열어놓고 합의할 수 있는 만큼 하자”고 했다. 국회 핵심관계자는 “6년 전 촛불혁명에 의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대선이 끝난 다음엔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정당은 정당대로 각기 정치적 계산에 들어가다 보니 결국 개헌에 실패했다”면서 “집권에 들어가기 전인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 대선 때에 국민투표를 같이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 견제 제도 못 만들어” = 개헌에 대해 여야는 생각이 크게 갈라졌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탄핵소추안 통과 이전인 지난 13일 우 의장을 만나 “지금이 헌법 개정을 할 수 있는 적기”라며 “국회의장이 중심이 돼서 헌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대선과 개헌을 동시투표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다. 물론 개헌의 필요성에 찬성한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새로운 사회질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다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하지 못하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국회에서는 개헌 논의가 수차례 이루어져 왔다”면서 “지금이야말로,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분산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성 평등, 인권, 기후 위기 등에 대응할 수 있는 헌법으로 개정 해야만 한다”고 했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은 “우리는 박근혜 탄핵 이후에도 대통령의 권한을 통제하고 견제하는 제도를 완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대통령제 헌정제도를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맞도록 바꾸는 걸 게으르게 하진 않았는지 반성한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이 인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헌을 얘기하는 것은 내란에 대한 단죄와 경제 등 국정 안정에 맞춰야 할 초점을 흐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모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금은 국정안정에 주력해야 하는 시점으로 개헌을 시도하는 것은 초점을 흐릴 수 있다”며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핵심관계자는 “탄핵이 인용되고 대선을 치르는 데는 5~6개월정도로 예상되는데 그 시간에 국민적, 정당간 개헌과 관련한 합의를 이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개헌이라는 큰 테마가 들어올 경우 오히려 국정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51% “대통령제 개헌 필요” = 시민단체, 소수야당 등 진보진영 중심으로 개헌 요구는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3~5일까지 전국 18세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방식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현재의 대통령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51%로 ‘필요하지 않다’(38%)는 의견을 앞섰다. 중도와 진보층에서는 60% 안팎이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한 반면 보수진영에서는 38%만 현행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진보당 등에서는 ‘7공화국을 만들 기회’라고 보고 있고 국민주도개헌만민공동회에서는 “탄핵 소추 후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 기간 동안 여야 모두 국민이 실질적으로 주인 노릇하고 대결과 적대의 정치를 화합과 상생의 정치로 바꾸는 개헌을 국민주도로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정 의원은 “이 중요한 일을 정당들에 그저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며 “정파적 이익에만 몰두되어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으므로”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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