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문시장 민심 싸늘 “탄핵은 자업자득”
돌아선 대구·경북 민심 “두번째 담화 실망”
탄핵 동의하지만 보수정당 지지철회 아냐
“비상계엄은 누가 뭐래도 잘못한 일이니 어쩌겠어. 그래도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연거푸 탄핵당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안 좋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날인 15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탄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이 상인은 “처음에는 ‘오죽하면 그랬겠나’ 싶었는데 텔레비전 나와 말하는 거 보니 화가 났다”고 했다. 이웃 노점 상인도 “두번째(12일) 담화 보고는 이건 아니다 싶었다”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고개를 저었다.
보수의 상징이 된 대구 서문시장 상인들의 심경은 복잡해 보였다. 이곳은 윤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취임 이후까지 여섯 번이나 방문했을 만큼 공을 들인 곳이다. 역대 보수 정치인들도 대구를 방문하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지지를 확인하곤 했고, 상인들도 이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12.3내란 사태 이후 이곳 분위기도 싸늘해졌다. 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몇 집은 윤 대통령 사진도 걸어놓고 했는데 이번에 다 떼어낸 것 같다”며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으니 속은 알 수는 없지만 상인들 대부분이 상당히 실망한 것 같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의료 대란 얘기를 꺼내는 상인도 있었다. 시장 도로변 상가에서 의류를 파는 한 상인은 “며칠 전에 구급차가 병원 앞에서 못 들어가고 한참을 기다리다 돌아가는 걸 봤다”며 “순간 내 가족이 위급한 일을 당하면 어쩌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고 했다. 가게에 있던 한 손님은 김건희 여사 얘기를 꺼내며 “마누라 단속을 제대로 못해 이런 일이 생긴 거 아니냐”며 “자업자득”이라고 쏘아붙였다.
서문시장뿐만 아니라 대구 어디에서도 드러내놓고 비상계엄에 동의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탄핵에 대해서도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탄핵에 반대했던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중구 경상감영터 인근의 한 식당 주인은 “대구도 윤석열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거다”며 “탄핵에도 대부분 동의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경북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구미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 모씨는 “계엄 상황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윤 대통령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고 화를 냈다. 상주에 사는 직장인 김 모씨는 “상주 터미널 앞에서도 탄핵 집회가 열렸는데 지나던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예전 같지 않은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탄핵을 외치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지난 14일 대구에서 열린 탄핵촉구 집회에 참여했다는 50대 주부 임 모(대구 수성구)씨는 “12.3내란 사태 이후 이른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대통령이 간밤에 또 무슨 사고를 치지는 않았을까 걱정돼 뉴스를 확인할 정도로 불안했었다”며 “다행히 국회에서 탄핵처리 되고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돼 당분간 마음 놓고 잠을 잘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시민 4만5000여명이 운집했다.
탄핵을 당론으로 반대한 국민의힘에 대한 원성도 커졌다. 지역 88개 정당·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윤석열퇴진대구시국회의는 16일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정파괴범 옹호하는 국민의힘 해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전직 대구시장을 지낸 권영진, 계엄해제 투표에 찬성을 표한 우재준 의원조차도 탄핵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탄핵 찬성세력을 배신자로 규정하는 등 정쟁의 프레임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며 “(이들은) 적극적으로 헌정파괴범을 옹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들도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까지 철회하는 건 아니었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조 모(서울 은평구)씨는 “주말 고향에 들렀다 아버지가 (이번 사태가) 이재명과 민주당 때문에 벌어졌다고 얘기하시는 걸 듣고 놀랐다”며 “이번 사태로 지지 정당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하혜수 경북 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구·경북 민심도 탄핵에 대해서만큼은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다”며 “다만 이런 분위기가 지지 정당에 대한 철회나 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신일·최세호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