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은 정당, 미국은 개입말라’ 소통 지시”

2024-12-17 13:00:01 게재

“부대변인이 외신에 계엄옹호 PG 전달”

한정애·김영배 의원 국회서 외교부 질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외교부 내부에서 계엄에 동조하는 듯한 석연치 않은 움직임이 있었다는 지적과 질타가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왔다.

계엄 선포 당시 외교부가 미국 측에 계엄은 정당한 것이라 설명하며 미국의 개입을 막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외교부 간부가 계엄을 옹호하는 내용의 문건을 외신 기자들에게 보낸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불거졌다.

이날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안질의에서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외교부 간부단 회의 직후 계엄령 해제 전, ‘(계엄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고 미국의 가치에도 부합하는 것이니 정당하다. 그러니까 미국은 가만히 있어라’라는 내용으로 미국측과 소통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3일 밤 용산 대통령실에 소집돼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계획을 듣고 반대 입장을 여러차례 밝힌 뒤 외교부 본부로 돌아와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이 시점에 김홍균 제1차관은 해외출장 중이었으며 강인선 제2차관은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다.

한 의원은 “간부단 회의 직후 미국과 이와같이 소통하라는 지시가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무진에서 소통했다는데 차관이 했냐”는 질문에 조 장관은 “상황 종료 이후 오전에 차관이 (소통)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강인선 차관은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와 통화했다면서 “제가 정확하게 전부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는데, 어떤 배경으로 그러한 일들(계엄)이 있었다고 이야기했고 마지막에 했던 이야기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와 시스템을 믿어도 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한 의원은 “내가 묻는 것은 계엄 해제 전”이라면서 정병원 차관보를 지목해 “정 차관보가 밑의 실무라인에게 이렇게 지시한 게 맞나? 실무적으로 (미국측에) 연락을 할 때 ‘메시아’ 운운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가치에도 부합하는 것이니 정당하다. 그러니 미국은 가만히 있어라(고 지시했나)”고 물었다. 정 차관보는 “그런 논의도, 지시도 없었다”고 답했다. 한 의원은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냐? 그 지시가 너무 기가 막혀서 (실무진이) 그대로 행하지 않았을 뿐이란다”고 질타했다. 이어 조 장관에게 “이 일련의 상황에 대해 조사하고 보고해 달라”고 요청했고 조 장관은 “네”라고 했다.

이날 회의에선 외교부에서 공보를 담당하는 부대변인(국장)이 12·3 비상계엄 사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대통령실의 언론 보도 입장문(Press Guidance·PG)을 일부 외신에 전달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야당은 “내란 동조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창호 외교부 부대변인이 계엄이 해제된지 30시간 가까이 지난 지난 5일 일부 외신 기자들에게 전달한 대통령실 PG를 공개했다. PG에는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에 대해 헌법주의자이자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누구보다 숭배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내린 결단”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합헌적 틀 안에서 행동을 취함”, “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통한 국정농단의 도가 지나치다” 등도 포함됐다. 이는 윤 대통령이 지난 12일 비상계엄 관련 제4차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내용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피력한 것이다.

유 부대변인은 해당 PG를 외신을 담당하는 대통령실 해외홍보비서관실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유 부대변인은 “기자들의 질의가 있었고 그에 대한 의문(문의)에 제가 자료를 받게 됐다”며 “정식으로 보낸 건 아니고,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외신 기자들에게 보냈다)”고 했다.

유 부대변인은 PG 배포 사실을 조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조 장관은 “(PG 내용을) 알지도 못하고 동의하지도 않는다. 외교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인선 외교부 2차관 역시 모르는 내용이라고 답했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 등 대변인실 당국자도 해당 자료의 배포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배 의원이 “내란 동조 행위”라며 “직무배제하고 감찰을 해야 한다”고 하자, 조 장관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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