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의 변신…의료기기서 바이오·반도체로 확대
3차원 촬영기술 응용, 화상의료기기 선두 … 바이오CDMO 분야 삼바·론자 추격 목표
3년간 18조원 투자, 완전히 다른 기업 전환 모색 … “일본 제조업중 개혁 성공한 사례”
아날로그 카메라시대 필름산업을 지배했던 후지필름이 의료기기 및 바이오, 반도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완전히 다른 기업으로 변신을 계속하고 있다. 필름산업의 몰락으로 기업 존망의 위기에서 구조개혁을 통해 의료기기 분야 등으로 눈을 돌려 기사회생한 이 회사는 반도체 소재분야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후지필름의 변신은 계속된다”면서 “회사 존망의 위기에서 쇠퇴산업에서도 수익을 창출해 부활을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전통 필름산업은 1990년 후반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 후지필름도 2000년 전후 칼라필름 수요가 정점을 찍으면서 급속히 쇠퇴의 조짐을 보였다. 실제로 2010년 필름 수요는 10년 전 대비 90% 줄었다. 후지필름 영업이익의 90%를 차지했던 필름산업의 몰락은 곧바로 기업의 존망 위기로 치달았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이러한 위기에서 고모리 시게타카 전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제2의 창업을 내걸고 구조개혁에 나섰다”면서 “사진필름으로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를 살려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의 눈을 돌렸다”고 했다. 후지필름은 이 과정에서 필름에서 벌어들인 자산으로 기업 인수합병 등을 통해 신규사업에 적극 진출했다.
가장 먼저 진출한 사업은 의료기기 분야다. 1934년 창업한 후지필름은 이미 창업 2년 만에 엑스레이 촬영에 필요한 필름을 개발하는 등 의료분야에서 오랜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의료용화상관리시스템(PACS) 분야에 적극 나서, 이미 화상진단장치에서 앞서 가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독일 지멘스 등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PACS는 엑스레이와 CT, 내시경 카메라 등 의료현장에서 사용하는 화상진단 관련 기술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후지필름은 엑스레이 시절부터 쌓아온 화상분석 등의 기술을 살려 이미 90년대부터 미국 테크 기업과 연계해 왔다. 여기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 인력 등을 적극 채용해 1999년 독자적인 PACS 시스템인 ‘SYNAPSE’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PACS 분야와 의료기기 사업은 2021년 히타치제작소의 화상진단기기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더 확대되고 있다. 이미 PACS분야에서 일본 국내 3400여곳, 전세계 5800여곳 의료기관에 기기를 납품하면서 이 분야 선두기업으로 올라섰다. 후지필름은 의료기기 관련 분야에서 올해 6900억엔(약 6조50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2%에 이른다.
이 회사는 앞으로 이 분야에서 AI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2019년 의료AI화상진단기술 플랫폼인 ‘SYNAPSE SAI 뷰어’를 개발해 일본내 680여곳 의료기관에 판매하고 있다. 2020년에는 CT 촬영을 통해 암 가능성이 있는 폐결절을 검출하는 화상진단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후지필름은 기술개발을 위해 ‘엔지니어와 의사의 밀착’을 강조한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의사와 밀착해 직접 그들이 가지는 문제의식과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기술개발에 나선다는 취지이다. 실제로 후지필름 기술자들은 며칠씩 병원내 방사선과 의사들과 함께 하면서 현장에서 실제 필요한 부분을 개발하고, 이를 의료기기에 접목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후지필름 한 기술개발 관계자는 닛케이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의사들의 말만 들어서는 충분하지 않다”며 “그들이 현장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움직임까지 반영하는 것이 이 분야의 진정한 니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후지필름은 바이오 관련 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스위스 '론자' 등이 앞서가고 있는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올해 4월, 2027년까지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약 7000억엔(약 6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바이오 의약품이 제약업계의 미래 주력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려는 포석이다.
현재 이 분야에서 후지필름은 후발주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동안 의료기기 분야 등을 통해 전세계 의료기관과 맺은 사업망 등을 살려 생산속도를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켜 선두주자를 따라잡겠다는 계획이다. 이이다 토시히사 CDMO 사업부장은 “제약업계는 특히 스피드가 중요하다”며 “상대 기업보다 1~2개월 앞서 당국의 승인을 얻어내고, 상업적 생산이 가능토록 하면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구스노기 겐 히토츠바시대학 특임교수는 “일본의 전통 제조대기업 가운데 구조개혁을 통해 성공한 사례는 후지필름과 히타치제작소를 꼽을 수 있다”며 “지난 잃어버린 30년 동안 전통 대기업 가운데 실패한 기업은 대단히 많다”고 말했다. 구스노기 교수는 “후지필름 구조개혁의 성공 요인은 올바른 전략과 전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내 위기의식이 개혁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후지필름은 올해 4월 향후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3년간 바이오와 반도체 소재 등의 분야에 총 1조9000억엔(약 17조8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3년간 투자액에 비해 30% 증가한 규모이다. 1조9000억엔 가운데 80%에 이르는 1조6000억엔이 차세대 성장 분야라는 점에서 후지필름의 사업전략을 가늠할 수 있다. 고토 테이치 사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투자 금액에는 기업 인수합병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좋은 조건이 있으면 과감하게 투자할 것”이라고 말해 추가적인 투자 가능성도 시사했다.
한편 후지필름 올해 매출은 3조1500억엔(약 30조원), 영업이익은 3150억엔(약 3조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매출은 3년 연속, 영업이익은 4년 연속 역대 최대 수준이 될 전망이다. 주가도 최근 5년간 두배 이상 상승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